수출촉진을 위해 64년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가 설립됐다. 해외시장에
대한 정보수집 시장분석등의 업무를 전담한 KOTRA는 민간상사의 해외진출을
크게 도왔을 뿐아니라 우리나라 수출증대에 큰 기여를 했다. KOTRA는
지금도 세계 주요시장에 진출하여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날로 심해가는
국제경쟁에서 이겨나가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또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1억달러 수출을 달성한 날인 64년11월30일을
"수출의 날"로 정하여 수출에 공이 많은 기업인을 포상하고 65년부터는
매월 수출진흥확대회의를 개최하면서 수출의 결의를 다졌다.

이러한 일들은 박충훈 상공부장관시절에 이루어진 것으로서 그는 수출진흥
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수출진흥 확대회의는 대통령 참석하에 관계부처장관을 비롯 당 학계 언론
기관 대표 국책은행장 국영기업체장,그리고 수출상사 대표와 중소기업
대표들까지 참석하는 매머드회의였다.

상공부에서는 상역차관보가 수출실적 분석과 수출전망,그리고 문제점 및
건의등을 보고했는데 당시 박필수 상역차관보(상공부장관 역임)가 이 일을
상당기간 담당했고 외무부에서 또 해외시장 동향을 보고했다.

보고가 끝나고 민간 기업체대표들이 애로사항이나 건의사항을 이야기 하면
즉석에서 대통령이 지시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모든것들이 오늘날 우리가 수출입국을 이룩하는데 큰 뒷받침이 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수출경쟁력이 약화되고 수출신장률이 둔화되며 국제시장
에서 우리의 상품이 밀리고 있는 현실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특히
지금처럼 국제 경쟁이 날로 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모든 경제주체들이
자기의 몫만 챙기려 하지말고 다시금 자세를 가다듬어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뛰지않으면 우리는 국제 경쟁에서 밀리고 영원히 선진국 대열에
들어가지 못하고 말것이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다.

5개년계획을 성공적으로 추진하는데 큰 기여를 한것중의 하나는 외자도입
이었다. 연평균 7%내외의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20%내외의 투자가
필요한데 투자를 뒷받침할 국내저축률은 62년 당시 0.8%에 지나지 않았다.
1차계획 기간중 국내 저축률은 연평균 6.1%였으며 2차계획 기간중에도
13%에 지나지 않았다.

이같이 저조한 국내저축으로는 도저히 7%대의 성장을 할수가 없었다.
따라서 투자재원 부족을 보충할수 있는길은 외자를 도입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60년대 70년대에 걸쳐 외자도입이 확대되어 외채가 늘어나자 차관망국론이
제기되고 재야에서 많은 비판을 퍼부었다. 그러나 이는 도입한 외자를
경제개발에 유용하게 잘 쓰느냐 못쓰느냐가 문제이지,외자도입자체가
나라를 망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도입된 자금이 생산적인 용도에
쓰이지 않고 호화 사치한 소비목적에 사용된다면 그것은 차관망국이
될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외자도입에 따른 부정이나 비능률적인면이 없었던것은
아니지만 총체적으로 볼때 그동안 도입된 외자는 거의 모두 공장건설이나
사회간접자본시설 확충 또는 생산원자재 도입등에 사용됐다. 이를통해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여 차관의 원리금도 갚고 고용도 늘리고 국민 소득도
증대시켜 오늘과 같은 경제발전을 이룩하게 된것이다.

만일 우리가 외자를 도입하지 않고 투자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여전히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참담한 후진국에 머물러 있을것이다.

최근 국제수지가 다시 적자를 나타내고 있지만 87,88년 우리나라가
국제수지 흑자를 실현한 이후 "차관망국론"은 더이상 고개를 들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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