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모임의 역사는 24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 우리들은 청운의
뜻을 품고 고시공부를 하기 위해 조용한 산사를 찾아 다니곤 했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은 서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경기도 광주군
초월리의 백마산 중턱에 자리잡은 허수룩한 토담집이었다. 그집의
바둑판같은 개인방에서 책과 씨름하다 주인집에서 하루 세끼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것이 인연이 되었다. 연령이나 조건이 비슷했던 우리들이
동지애적인 친근감을 갖게된것은 지금의 하남시 산곡동으로 공부터전을
옮기면서 부터이다.

그후 우리가 사회인이 되어 모임을 만들기로 했을때 이 추억어린 지명을
따 "산곡회"라 부르기로 했던 것도 모두 그런 까닭이다. 지금은
중부고속도로가 힘차게 산곡동마을을 관통하고 있지만 20년 전에는
개구리와 산새울음 소리만 들리는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마을 이었다.

이곳을 거쳐간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우리들끼리는 뜻이 통하고 호흡이
맞았으며 다른 사람들과는 좀 색다른 행동을 했던것 같기도 하다.

우리 회원중에는 사학과 족보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 있어 자칭 점잖은
사람들끼리 귀한 이름을 부르는 것은 좋지 못하다하여 개인별 특성을
고려,조선시대 등과못한 사람들의 직위등을 섞어 참봉 초시 생원 주사 좌수
동장 테스(소크라테스의 약) 풍헌 주부등의 별칭을 정하여 불렀는데 지금도
이 호칭이 자연스럽게 들리고 있다. 회장은 순번제로 돌아가며 맡고 1년에
2~4회 가족동반 등산 여행 야유회를 갖는데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제법
성황을 이루다가 요즘에는 회원부부만 참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한창 젊었을때 "고시"라는 같은 목표때문에 만나 목표를 달성한 사람도
있고 달성을 못한 사람도 있지만 고시준비 자체도 일생의 한 과정에 불과한
것으로 회원들 모두가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사회인이 된 후 산곡회의
탄생이 가능하였고 지금도 직장과 신분에 구애됨없이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고 있다. 회원들을 소개하면 김래길(서울신탁은행 인천출장소장)
김병일(경제기획원 예산국장) 박철웅(개인사업) 신근식(화원주택대표)
신한철(신택경영관리연구소 대표) 이우상(현대중공업이사) 정동수(재무부
보험국장) 정홍식(체신부 국장)씨와 필자,그리고 그 부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