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군의 총사령관은 번주의 아들인 모리야스히로였으나,실제 지휘는
삼가로가 맡았다. 그들은 교토를 포위하듯이 포진을 하고서 마지막으로
조정에 요구조건을 탄원 형식으로 보냈다.

정변때 실각한 일곱명의 존황양이파 중신들을 재등용하고,그때 퇴각 명령을
받아 교토에서 물러난 조슈 번군의 재입경을 허락할 것,그리고 아이즈번의
번주이며 교토수호직을 맡고있는 마쓰다이라가다모리를 내쫓을 것 등
이었다. 마쓰다이라는 친막부의 강경파였던 것이다.

그런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질리가 만무했다. 결국 조슈군은 교토 공격을
감행했다. 1864년7월19일의 새벽녘이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교토 시가지는 삽시간에 여기저기서 불길이 솟아
오르고,총소리가 난무하며 아비규환의 도가니로 화했다. 수천의 군사가
사방에서 일시에 돌진해 들어갔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주력부대는 일로 황실을 향해 진격했다. "절대로 황실에 불을 질러서는
안된다. 만약 천황폐하에게 조금이라도 위해를 가하는 일이 있으면 엄벌에
처한다. 다만 천황폐하를 둘러싸고 있는 간신배들을 일소할 따름이다"
이렇게 군사들에게 엄명이 내려져 있었다.

황실에는 아홉개의 출입문이 있었다. 그가운데 하나인 하마구리어문,즉
천황이 출입하는 문으로 주력부대는 돌진해 갔다. 그 전해 정변으로 조슈의
번군이 교토에서 퇴각하기 전까지는 그 하마구리어문을 그들이 수비하고
있었는데,그뒤 아이즈 번군이 그 문을 지키고 있는 것이었다.

황실의 아홉개의 출입문은 지정된 아홉번의 번군이 각기 한개씩 맡아 수비
하는게 관례였다. 그러니까 조슈군은 자기네가 수비했던 그 문부터 탈환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격렬한 전투 끝에 결국 조슈군은 탈환에 실패하여 황실안으로
침공해 들어가지 못하고,물러나고 말았다.

시가지 여러 곳에서 전투는 아침나절까지 계속되었다. 조슈군이 단독으로
막부군을 비롯한 여러 친막부 번의 번군들을 상대로 싸우는 터라 우선
수적으로 비교가 안될 정도였다. 그래서 마침내 패퇴하지 않을수 없었다.

새벽녘에 시작하여 아침나절에 끝난,불과 몇시간 동안의 싸움이었는데도
삼일간 불길이 가라앉지 않고 시가지를 뒤덮었다. 중신들의 저택 수십채를
비롯해서 일반가옥 이만팔천여호가 소실되어 황도인 교토는 온통 쑥밭으로
화했다. 존황양이의 혁혁한 지사들이 수없이 죽어간 것은 말할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