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더대왕이 지중해 연안을 석권하고 인도의 접경지대에 진지를
구축했다. 인도의 왕은 파죽지세로 침공해 오는 알렉산더대왕의 힘에
대항할 길이 없었다.

인도의 왕은 전국에 포고령을 내려 국내 제일의 미인을 뽑아오도록 했다.
미녀가 선발되어 오자 왕은 그녀를 높은 탑속에 가두고 독초에서 뽑아낸
독약을 극히 소량씩 먹이기 시작했다. 미녀가 받아먹는 독약의 양은 날이
갈수록 늘어났고 20여일이 지나자 온몸에는 상당량의 독약이 배어들었다.

왕은 그녀를 알렉산더대왕에게 화평의 대가로 "진상"했다. 절세의 미녀를
선물로 받아든 대왕은 크게 만족했다. 알렉산더대왕이 그녀를 텐트속으로
데리고 들어가 하룻밤을 같이하고 나면,그녀의 몸이 흠뻑 머금고 있던
독약이 대왕의 몸으로 옮겨지도록 계획되었었다.

전장에는 철학자이며 자연과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가 대왕을 수행했다.
미녀를 본 그는 순간적으로 위험을 알아차렸고 대왕으로 하여금 그녀를
멀리 하도록 했다. 미녀의 유난히 빛나는 눈동자속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독기가 서린 살의를 찾아볼수 있었다. 음모는 탄로가 났고 미수에 그쳤다.

클레오파트라는 공동왕위에 올랐던 프톨레마이오스13세를 독살하고
자신도 뒷날 독사에 물려 자살했다. 철인 소크라테스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독배를 마시고 세상을 하직했다.

약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독약과 해독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민족고유의 전통약물이 손끝과 전설을 통해 전래되어온 것이다.
한약도 결국 이런 뿌리의 한줄기일수 밖에 없다.

한편 고대인들은 사람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약초이외에도 악신을
쫓아내기 위해 춤과 노래, 때로는 장신구들을 이용하는 속신에 의존했다.
현대 의약의 근원은 18,19세기께부터 발달된 화학적 실험과 인체해부가
진전되면서 과학화한 것이다.

한약과 양약사이의 분쟁이 극한상태로 치닫고 있다. 분쟁의 원인을
제공한 보사부는 뒤늦게야 타협안을 내놓고 양측의 손을 억지로 잡아당기고
있는 모습이다. "하나 더하기 하나 나누기 둘"의 단순논리로 이 위기를
수습하려 한다면 그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할것만 같다. 당초에
양.한약은 "1+1"의 대상이 아니기에 말이다. 우리의 보사부에도
아리스토텔레스의 혜안이 있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