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인으로서 최초로 한국땅을 밟았던 그레고리오 데 세스페데스신부의
방한 4백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에 대한 재조명이 교회사학계에서
활발해지고있다. 특히 금년에는 한국인에게 처음으로 천주교를 전교했던
그의 행적을 기념하는 행사도 열리고있다.

그의 출신지인 스페인 톨레도의 비야누에바 데 알카르데테 시청은
진해시에 그의 기념동상을 기증, 6일오전 진해시 풍호근린공원에서
동상제막식을 가졌다. 제막식이 끝난다음 스페인정부가 대전세계박람회의
국제민속축제에 파견한 비야누에바시 민속무용단의 "과거를 일깨우며"의
공연도 있었다.

이날 제막식에는 비야누에바 데 알카르데테의 앙헬 산체스 베아토시장및
시의회의원들과 안토니오 고사노 주한스페인대사등 관계자 다수가 참석해
그의 업적을 기렸다. 이동상은 비야누에바 데 알카르데테시 문화원앞에
세워져있는 기념동상과 똑같이 만든 것으로 스페인의 유명한 조각가
마누엘 모란테의 작품이다.
상단에 한국국기가 있는 은유적인작품.

세스페데스신부(1551~1611)는 임진왜란때 두차례에 걸쳐 모두
1년8개월동안이나 한국에 머물렀고 한국에서는 물론 일본에 돌아가서도
포로로 잡혀온 한국인 7천여명을 천주교인으로 개종시켜 한국천주교회사에
큰 공헌을 한 인물.

1551년 스페인 비야누에바 데 엘카르데테시에서 태어난 세스페데스는
18세때 살라망카에 있는 예수회에 입교, 1571년 아빌랴에서 신학공부를
한뒤 인도의 고아에 파견됐다. 이곳에서 전교활동을 하다가 당시 고아에
와있던 선교사들과 함께 1577년 일본 규슈지방으로 옮겨 전교활동을
벌였다.

규슈 칸사이지방에서 주로 포교활동을 하다가 당시 도요토미막부의
권력자였던 코니시 유키나카(소서행장)와 규슈의 유력가문인 호소카와
가라시아(세천)등을 전도했다. 이후 35년간이나 호소카와가문의 비호아래
도마에(풍전) 오쿠라(소창)지방을 중심으로 전교활동을 벌이다가 1611년
오쿠라에서 사망했다.

세스페데스신부는 임진왜란이 터졌을때 코니시유키나카의 배려로
왜군들을 따라 1593년 12월27일 내한, 1595년 6월 일본에 소환됐다가
1597년 다시입국 2개월동안 머물렀다. 세스페데스신부는 조선에 와서
일본군 진영에 잡혀오는 조선인포로들에게 전교활동을 벌였으며 이에따라
1594년부터 1598년사이에 개종한 조선인개종자가 7천명이 넘었던 것으로
추산되고있다.

그는 조선에 머물면서 스페인조정에 4통의 서한을 보냈는데 한국문화의
우수성과 창의성을 극찬, 한국을 당시 유럽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다.
조선수군의 승리를 이 편지에 자세히 묘사했으며 특히 거북선을 뚜껑이
덮인 배로 지칭하면서 이의 활약상을 소개했다.

이같은 그의 업적을 기려 스페인 비야누에바 데 알카르데테시는
세스페데스문화원을 설립, 일본및 한국학연구의 전문기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박철교수(한국외대.서반아어과)는 "세스페데스는 서양인으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한국을 처음으로 세계에 널리 알린 인물"이라면서
"국내학계에서도 세스페데스신부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벌여 당시 서양에
비쳐졌던 우리의 모습을 알아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오춘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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