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문명비평가는 이미 1930년대에 "아이들의 세기"가 바야흐로 도래하고
있다고 말한바 있다. 우리사회에 있어 아이들이 가족위에 군림한지도 근
한세대가 되는것 같다.

한 자녀만을 낳도록 법적으로 규제받고 있는 중국에서도,특히 남자아이는
4~5세가 되면 과외공부를 하는등 온 가족의 정성의 표적이 되어 "아기
황제"로 불려지고 있다고 한다. 아이들에 대한 지나친 애정은 가족제
중심의 우리 전통사회의 미덕 혹은 악덕의 유산인가.

아이들의 사회사를 쓴 에리아스에 의하면 18세기 이전 유럽에서는
아이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관행이 없었다고 한다. 유명한 "수상록"의
저자인 뭉테뉴는 "나는 젖먹이 아기를 2~3인 죽였는데 슬프지 않았던
것은 아니나, 괴로움은 느끼지 않았다"라고 슬회한 바 있다. 귀족
가문의 몽테뉴가 그러하였거늘 언제나 허기에 시달려야 했던 일반
서민에 있어 많은 아이들이란 참으로 성가신 존재였다.

당시의 아동관은 한가정 평균 8~10명으로 추계되는 그 시대의 다산과도
관련이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당시 아기는 해를 넘기지 못하고 죽는
존재로도 여겼다.

그런데 흥미있는 것은 살아남아서 유년기에 들어서면 아이들은 바로
어른과 같이 취급되었다. 그리하여 어른을 따라 노동이나 가사에 종사
하고, 또 놀이도 아이들끼리 혹은 어른들과 함께 어른의 놀이를 즐겼다.
아동복이 따로 있지 않았듯이(아이들은 그들이 속한 신분계급의 어른의
옷을 그대로 줄여 입었다)아이들의 놀이나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라는 관념이 없었던 것이다.

아기예수를 제외하면 17세기 이전까지 아이는 그림에 그 모습을 나타내는
일이 없었다. 여성을 죄악시한 중세의 그림에 성모 마리아를 제외하고는
여성의 모습을 찾을수 없듯이. 요즘 우리 사회에서의 아이들에 대한
지나친 애정은 지난날의 전적인 무관심과 어쩐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