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자 :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

금융실명제가 드디어 대통령 "긴급명령"의 형태로 공직자 재산공개와
때맞춰 부분적이나마 93년8월12일부터 실시되었다. 원래 금융실명제의
핵심내용은 사실상 실지명의화 하는것 자체, 금융자산소득(이자 배당)에
대한 중과세 또는 종합과세, 유가증권 양도차액에 대한 과세등 각기 별도
취급될수 있는 3가지가 혼재되어 있다. 이번에는 실지명의화만하고 96년
부터는 종합과세하되 유가증권양도차액에 대한 과세는 97년이후 검토하게
되어있다. 따라서 이번 조치로 금융실명제가 겨냥하는 주요목표중
지하경제의 양성화및 부정부패의 척결에 관련한 효과는 기대되지만 금융소득
에 대한 중과세나 새로운 세원발굴은 다소 시간이 경과한후 실현시키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금융실명제가 시행될 경우 국민경제적 영향이 매우 광범위하게 미치고
기존의 정치구조 사회질서에도 다양한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그
변화의 정도는 실명화될 금융자산의 규모, 가명이나 차명계좌의 실명화율,
금융실명제와 관련한 정부.각급금융기관들의 전산처리능력, 일반적
경제상황과 일반국민들의 부작용발생 기간중의 참을성등에 의존한다.

한편 사실상 실명화될 금융자산의 규모는 완전한 가명이 4조원 내외이지만
차명을 포함할 경우 20조~30조원이 될 것으로 추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현금인출이 허용되는 10월12일이후 움직일 자금의 규모는 향후
2개월동안 취하게 될 정부의 조치나 일반국민들의 협조, 정부에 대한
신뢰성등에 따라 가변적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향후 몇개월간의 변화를
예의 주시하면서 정부가 탄력적으로 대응하리라고 생각되지만 어찌됐든
이번 금융실명제실시에 따라 단기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우선
외환자유화 추세하에서 일부 자금이 해외유출될 위험성이 있다.

또 부동산투기가 극성을 부릴것이라는 우려도 많으며 자금시장이
단기적으로 교란을 보일것이란 지적도 있다. 이런 와중에서 대부분의
기업, 특히 중소기업들이 갑작스런 자금부족을 일으켜 흑자도산 내지
연쇄도산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공금융기관에서의 대출재원 부족은
일시적이라고 판단되므로 한국은행에서 통화공급을 늘려 대처해 나갈수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등 담보가 부족한 기업들에 대해 금융기관들이
사채업자들을 대신해서 보다 큰 위험부담을 안고 자금을 공급할지는
의심스럽다.

증권시장은 앞으로도 수시로 최소한 3조~4조원에 해당하는 불안정한
자금으로 인해 폭락사태를 경험할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제도
한시적일수 있으며 이상의 단기적 부작용은 정부가 잘 알고 있으므로
최대한 대비해 나갈것이기 때문에 사실은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오히려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파급효과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다음의
영향에 대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환경조성정책이 실시되어야 할 것이다.

첫째 금융실명제실시가 세제개혁등 재산계층에 대한 중과세및
내수경기후퇴와 맞물려 금융저축기반을 서서히 가라앉힐 것이란 점이다.
큰손들이 이탈하는만큼 중산층을 중심으로 한 별도의 저축증대정책이
요구된다.

둘째 인플레가 가속화되고 시중금리는 올라갈수 있다. 그렇지않아도
인구고령화 여가및 복지추구에 따라 소비성향은 높아지는데 현금통화비중의
증대에 따른 통화정책의 효과 감퇴,인플레 이자및 배당소득세 증가에 따른
조세전가등이 영향을 미쳐 금리상승압력이 강해질 것이다.

셋째 기업경영측면에선 거래자료가 과거보다 더잘 노출됨으로써
종전세율대로라면 훨씬 많은 세부담을 안게되며,특히 리베이트가 관행인
산업에서는 새로운 거래조건을 모색해야 되는 부담을 지게 된다. 또
실명제로 인해 당분간은 소비가 얼어붙고 설비투자가 지연될 가능성이 커져
"내수경기"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같은 상황을 감안할때 이번 금융실명제는
시기선택이나 내용의 적합성면에서 다소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정직한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으로서 어쨌든 성과를 거두어야 할것이다. 이미
정부가 발표한 통화의 신축적 공급, 중소기업대책, 외환관리강화나
부동산투기규제, 엄격한 예금비밀보장등 운영측면에서의 대책은 부작용
최소화의 차원에 그치는 것이다. 효과극대화 차원이라면 정부기관과
금융기관이 공동참여하는 종합전산망의 구축, 돈 안드는 정치풍토 조성,
행정규제완화, 공무원의 처우개선과 정부기구축소, 금융자율화와 금융산업
개편, 중산층의 저축장려, 노동시장에서의 생산성향상을 위한 제도개혁,
기업들의 공정경쟁풍토조성등이 모두 금융실명제가 지향하는 "사회의
정상화(투명성확보와 경제정의실현)"를 위해 꼭 필요한 보완대책들이다.
이러한 보완책이 빨리 실시되지 않으면 지하경제는 다시 살아나서
금융실명제는 왜 했느냐의 비판을 받을 것이다.

한편 하반기경제운영면에서 특별히 강조되어야 할 점은 우선
실명화의무기간중 부작용방지 차원에서 지나치게 많은 통화공급이 이뤄지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실명화율이 높아져야
가능하고 일반국민들이 빨리 평정을 되찾아서 현금인출을 억제하고 예금을
증가시키도록 하는게 최선의 길이므로 국세청이나 사정기관에서 너무
욕심을 내지 않아야 한다.

특히 추석이나 10월12일전후의 기간이 가장 위험한 시기이므로 비상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금융기관들의 적극적 대출,신용대출,회전대출이 가능토록
여건마련이 필요하다. 금융기관의 융자태도가 크게 바뀌지 않으면 사채시장
은 다시 살아난다.

또 각종의 제도개혁에 따라 기업경영환경은 악화되고 성장률은 당분간
떨어질수 밖에 없음을 분명히 해서 국민스스로 자기보호를 하도록 하는게
좋다. 당분간은 경제체질개선이 최우선 정책임을 분명히할때 국민경제는
산업구조조정이나 노동시장개혁 합리적 투자활동이 일어나고
수출지향, 제조업중심.미래지향의 분위기가 살아날 것이다. 향후 몇년간
안정적 성장시대를 대비하는 오늘의 자세가 오히려 미래의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만든다. 정부스스로 단기적 성장률에 집착해서 과잉PR하거나
적자예산편성이나 위기관리차원이 아닌 금융완화를 계속해서는 경제를
망친다. 또 구조전환기에 민간부문에서 지나친 양적팽창을 장려해서도
후일 큰 부담을 지우게 된다. 대형국책사업을 조기추진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도 그 재원조달을 정부기구축소나 경상비의 대폭 축소로 충당할 것
같지 않고 국내 제조업에 대한 설비투자 파급효과는 크지 않으며
노동수요나 자금수요를 불필요하게 촉발시킴으로써 결국 제조업경쟁력
약화를 가속시킬 위험이 크다. 금년하반기에는 연속되는 제도개혁때문에
통화공급을 완화할수 밖에 없는 형편인데 정부조차 총수요 촉발을 거든다면
내년이후 물가가 큰 걱정이다. 더군다나 정부의 당면목표가 성장우선인지,
체질개선우선인지 또한번 혼란스럽게 만든다. 투자촉진도 필요하지만
내용이 양보다 더 중요하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