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앞으로 시계사업을 어떻게 끌고갈 것인가.

그룹의 계열사 매각조치 발표후 두달이 넘은 지금 삼성시계 관계자들은
이건희 회장의 최종결정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매각이 아닌
흡수합병으로 이미 방향이 굳어졌는데도 그룹내 인수당사자가 지정되지
않아 삼성시계 관계자들은 막연한 불안속에 자체정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위축된 분위기의 삼성시계는 이 침묵을 "질경영"이 아닌 "양경영"으로
실패한 삼성시계에 대한 이회장의 문책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삼성시계 실무진은 지난 6월9일 매각조치 발표직후 합작선인 세이코
관계자들과 두달여의 밀실작업에 들어갔다. 이는 마지막으로 삼성시계
경영개선을 위한 세이코측의 협조를 요청하기 위한 것이었다.
"마지막"이란 삼성이 합작관계를 맺게된 최대요인인 무브먼트 핵심기술
이전에 대해 세이코측이 10년동안 보여온 완강한 거부자세로 인해
삼성으로서는 이미 결별을 어느정도 예상하고 있었음을 뜻한다.

애초에 삼성은 83년 중소업계의 반발을 무릅쓰고 시계업계에 진입하면서
세이코의 기술을 이전받아 스위스나 일본 못지않은 시계강국으로 한국을
부상시키는 화려한 역할을 꿈꾸었다. 정밀기술 이전은 시계뿐 아니라
삼성항공의 카메라에까지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했었다. 삼성시계는
87년께부터 무브먼트 자체개발 임박, 90년까지 개발완료 예상등 숱한
발표를 내놓으며 조바심을 보였으나 양산으로 연결될수 있는 실질적인
개발은 여전히 요원하다. 실제 9백7억원이라는 92년의 매출도 유통망
장악으로 이뤄진 부분이 크다.

예상은 적중했고 세이코는 떠난다. 자본금 잠식상태인 만큼 49%의
지분은포기하기로 했다. 이미 10년의 합작을 통해 국내시장을 파악한
세이코는 95년 시계가 수입선다변화품목에서 해제되면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세이코 브랜드로 본격적인 시장공략에 나설 것이 분명하다.

스위스 SMH사도 삼성과의 론진 브랜드 계약경신을 중단키로 해 삼성에는
카파 삼성등 중저가의 브랜드만 남게됐다. 그만큼 운신의 폭이 좁아지는
셈이다. 현재 삼성시계는 의향서까지 교환한 단계의 스위스 투자계획건도
전면보류한채 대기하고 있다.

인수할 계열사가 전자냐, 항공이냐도 이미 기울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삼성정밀이 전신이며 시계와 유통망및 기술이 유사한 카메라를 안고 있는
삼성항공은 이론적으로는 이상적인 인수자가 될수 있지만 현재의
경영상태로 보아 4년 연속적자의 시계를 맡을 형편은 못된다.

결국 인수가능성이 가장높은 전자로서는 시계인수가 달갑지 않지만
시계로서는 하루빨리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문제는
시계사업부 형태로 흡수하더라도 어느정도 규모를 유지할 것인가이다.

이제 남은 것은 삼성시계의 이미지가 결별한 파트너들의 신속한
국내시장공략과 국내중소업계의 분발속에 더 실추되기 전에 새로운
경영전략을 서둘러 확정하는 일이다. 여기에 이회장의 뜻이 결정적인
변수임은 두말할 것도 없다.

<오현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