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명이나 차명예금의 실명전환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전환기간이 오는
10월12일까지 2개월이어서 가명이나 차명이 벌써부터 얼굴을 내밀 필요는
없으나 서서히 물위로 올라오고있다.

한은이 상업 제일 보람 대동은행 등 10개은행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실명제가 실시된지 이틀간(13~14일) 가명이나 차명에서 실명으로 전환한
실적은 7,700계좌,1천14억원이었다.

이중 차명에서 전환한 계좌는 1,300개,5백1억원이고 가명에서 전환한 계좌
는 6,400개,513억원 이었다. 실명제 이튿날인 14일이 첫날인 13일보다
전환실적이 많았다.

전환한 계좌는 계좌당 평균 6,500만원으로 국세청 통보대상이 대부분
이었음을 알수있다.

은행관계자들은 아직 수면으로 나오는 가려진돈이 많지는 않지만 점차
햇빛을 받기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차명계좌가 총 얼마인지를 알수없어 전환율도 낼수는 없지만 가명계좌는
금액기준으로 6.4%가 실명을 드러냈다. 이들 10개은행의 가명계좌는 모두
30만4,100개,1조2,257억원인데 이틀간 금액기준으로 6.4%인 513억원이 실명
으로 전환됐다.

과연 앞으로 어느정도의 속도로 실명전환이 이루어질지,또 모든 가명이나
차명이 실명으로 전환할지는 불투명하다. 금융계에서는 전환만료기간인
10월12일에 임박해서야 모습을 비칠것으로 내다보고있다. 지금 전환하나
막판에 전환하나 마찬가지지만 일단 기다려보자는 심리가 강해 9월말~10월
초에 대거 전환이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일부에서는 전환기간이 끝나 국세청 통보의무가 없어지면 전환할것이라는
추측도 많다. 전환기간이 끝나면 1년마다 10%씩 과징금을 물게 돼있으나
과징금을 물더라도 국세청통보만은 피하자는 "소신파"도 있을 것이라는
얘기다.

국세청에 통보돼 자금추적을 당해 낭패를 보느니 아예 적당한 금액은 손해
를 본다는 "돈보다는 명예"를 택하는 사람들도 나타날 것이라고 일선 창구
에서는 예상하고있다.

아예 실명전환을 하지않고 계속 둠으로써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으려는
"배짱파"도 있을 것이다. 소신파나 배짱파는 모두 돈보다는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정치인 또는 고위공직자들일수도 있고 대담한
사채업자일수도 있다.

아직은 누가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할수 없다. 이들 모두 돌아가는 상황을
봐가면서 "작전수립"에 열중일 것이라고 은행사람들은 지적하고있다.

전환문제로 골치를 앓고있는 비실명 고객을 향한 기발한 "장사"도 나타
나고있어 세상은 요지경임을 실감나게 하고있다. 손놀림이 빠른 일부 사채
업자들이 노출을 꺼리는 예금주를 골라 실제 예금액보다 값싸게 통장과
도장을 산다는것.

이들은 사업자등록을 했으나 실제로 활동하지않은 법인이나 위장등록한
법인의 이름으로 예금을 찾아간다. 국세청에서 자금출처조사를 하더라도
어느정도 시간이 걸리는 점을 틈타 잠적해 버린다면 뒷탈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사채업자들은 1억원이 예금된 가명예금계좌를 7,000만원 정도에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명예금주들은 3,000만원을 손해보지만 명예를
지키는 비용이라면 얼마든지 지불할 준비가 되어있을 것이라는게 금융계에
떠도는 얘기들이다.

어떻든 앞으로 실명전환과정에서 기상천외한 사례가 생길수도있다. 그과정
에서 그간 베일에 쌓였던 차명의 실태도 어느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가명이야 알수 있었지만 차명은 그야말로 오리무중이었다.

<고광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