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실명제가 실시되면서 예금자의 비밀이 과연 제대로 보장될수 있을지가
관심거리다.

모든 금융거래를 자기 이름으로만 가능토록 함으로써 개인의 금융자산
규모는 물론 입출금상황이 백일하에 드러나게 됐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종전 금융실명거래법에도 예금자의 비밀보호를 엄격히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권력기관의 "전화한통"이면 예금자료가 제한없이
새나가는 상황이어서 걱정이 크지 않을수 없다.

정부는 이번에 금융실명제 도입을 위한 긴급명령권을 발동하면서 비밀보호
장치를 대폭 강화,예금자의 개인적인 정보가 함부로 누설되지 않도록 했다
고 설명했다.

정보제공을 요구할 수 있는 요건을 까다롭게하고 정보누설자에 대한 처벌
을 강화한 것이 골자다.

예를들어 법원이나 금융감독기관등이 금융거래정보 제공을 요구할 경우
반드시 문서로써 점포별로 요구하게 해놓았다. 문서에는 반드시 사용목적과
요구정보의 내용을 명시토록했다. 요구내용을 사용목적에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로 제한토록 명문화한 점도 눈에 띈다.

특히 해당 금융기관이 부당한 정보제공을 요구받을 때에는 거부해야만
하도록 거부의무조항을 신설했다. 상황에 따라 정보제공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에 적합하지 않을때는 반드시 거부토록 의무화 시켰으며 이를
지키지 않을때는 정보누설로 처벌받도록 했다.

재무부는 부당한 정보제공요구의 사례도 제시했다.

예컨대 정보제공 요구권한이 없는 자가 정보를 요구하거나 문서로 요청
하지 않은 경우,불필요하게 상세한 자료를 요청하는 사례 등을 예시했다.
또 요구서에 사용목적을 기재하지 않는등 요건을 구비하지 못한때도 부당한
정보요구로 처리토록 했다.

쉽게 말해 종래처럼 감사원이나 검찰 국세청 금융당국등이 전화나
팩시밀리로 주민등록번호만 부르면 거침없이 예금거래정보를 내주는 관행을
근절시키겠다는 뜻이다.

정부는 이번 긴급명령에서 정보누설등 비밀보장 위반에 대한 처벌도 강화
했다. 종전 금융실명거래법에는 비밀보장 위반시 3년이하의 징역이나 3백
만원이내의 벌금을 물리도록 했으나 벌금액을 최고 2천만원으로 대폭
늘렸다.

긴급명령의 문구로만 보면 종래에 비해 정보제공을 요구하는 요건이나
제공할 수 있는 정보의 범위가 까다로워 지는 것은 틀림없다. 또 금융기관
의 자율성이 근래들어 상당히 제고돼 이같은 규정들이 지켜질수 있는 여건
도 조성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규정만으로 치자면 종전법도 비밀보호를 천명하고 있기는 마찬가지
다.
<>법원의 제출명령이나 법관의 영장제시
<>세무조사용 과세자료 제출
<>금융감독기관의 감독과 관련된 제공요구
<>금융기관 내부 및 상호제공
<>법률에 의해 공개가 의무화된 정보를 제외하고는 거래자의 동의없이
정보를 제공할수 없게 되있다.
요구방식에 대한 제한이 없을뿐 제3자 누설금지,위반자에 대한 처벌이
규정돼 있기도 하다.

하지만 금융기관 종사자가 금융정보누설로 처벌받은 경우는 역사상 단
한건도 없으며 "힘"만 있으면 법원의 영장이나 감독기관의 요청 없이도
자유자재로 금융정보를 빼낸 것이 현실이었다. 권력기관이 필요로 할때는
그 용도를 묻지않는 것이 관례이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은 오래전 얘기가 아니라 새정부들어 비리혐의자에 대한 사정
을 벌일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법률은 있으나 아무도 지키지 않고 어겨도
처벌받지 않는 사문이었다는 얘기다.

더군다나 새법에서도 정보요구 요건이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규정돼 비밀이
침해당할 소지가 얼마든지 남아있다. 따라서 금융실명제가 제대로 정착
되려면 비밀보장 규정이 보다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규정돼야하며 정보
수요자나 제공자가 반드시 준수토록 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한다는게 경제계
의 지적이다.

<정만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