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솝우화집에는 "산나귀와 집나귀" 이야기가 나온다.

산속에서 자란 나귀는 혼자 힘으로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찾아 다니면서
살아갔다.

그러던 어느날 산나귀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내려왔다가 어느 집 외양간
에서 한가로이 먹이를 먹고 있는 집나귀를 보았다. 깨끗한 외양간은 비나
바람에 조금도 불편함이 없을 것 같았다. 게다가 집나귀가 먹고 있는 먹이도
아주 맛있게 보였다.

산나귀는 그러한 집나귀가 너무 부러워서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그때
집나귀는 "사람의 집에 와서 살아 보렴. 얼마나 불편한지 알수있을 테니"
라고 말했다. 그러나 산나귀는 사람의 집에 가서 그런 좋은 외양간과
맛있는 먹이를 달랄 용기가 나지 않아 산으로 돌아 오고 말았다.

그 며칠뒤 산나귀는 고갯길에서 보리섬을 산더미같이 실은 수레를 끌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숨가쁘게 올라오는 집나귀를 만났다. 산나귀에게
인사를 하느라고 잠시 멈칫하자 주인은 막대기로 집나귀의 등을 때렸다.
매를 맞은 집나귀는 꼼짝도 못하고 다시 수레를 끌기 시작했다.

이 광경을 본 산나귀는 "저런걸 모르고 괜히 집나귀를 부러워 했구먼.
아무리 깨끗한 외양간에서 맛난 먹이를 먹고 지낸다해도 저런 괴로움을
당하는 거라면 자유롭게 사는 내가 훨씬 행복한 셈이야"라고 중얼거렸다.

이 우화에 나오는 산나귀와 집나귀는 고도산업사회에서 상반된 삶의
양태를 지닌 현대인상을 은유해 주는 것 같아 자못 흥미롭다. 집나귀는
물신주의에 순응하는 인간상을, 산나귀는 자유로운 자연인이 되고자하는
인간상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현대인들은 어느덧 산나귀형이 되기보다는 집나귀형이 되기를 갈구한다.
경제적 부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경제적 부를
위해서 존재하게 됨을 뜻하는 것이다. 여기에선 자연히 탐욕과 죄악과
불행이 잉태될수밖에 없을 것이다.

최근 홍콩의 시장조사기관인 SRG가 아시아9개국 도시인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행복지수"조사결과도 부가 행복의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는 점을
일깨워 줬다. 소득이 높을수록 개인의 행복 감지도가 체감된다는 사실은
그동안 금과옥조로 여겨온 "성장 일변도정책"이 잘못된 것임을 재확인시켜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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