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발표한 범양상선 상대 고위층 사기사건은 특혜미끼를 내세운
일개 사기꾼에게 미숙한 2세 경영인이 꼭둑각시처럼 농락당한 희대의
사기극이란 점에서 충격을 주고 있다.

특히 갑자기 대기업을 떠맡게 된 20대 기업주가 단지 "고위층"이란 말
한 마디에 1백억원이란 거액을 사기꾼에게 안겨줬다는 사실은 정치권력에
허약한 우리 기업의 단면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나 "단순사기"라는 검찰의 발표에도 불구,사기꾼 김문찬씨의 배후에
과연 다른 공범이 없었는가라는 의혹이 남아 있다.

<>접근=민정당 창당때 임시 후원회장을 맡았던 선친 김모씨로부터 82년
(주)대호원양을 물려받은 뒤 87년 도산한 유니버스백화점을 인수하려다
사기혐의로 피소돼 실패하는등 재기를 노리던 김씨는 박건석회장의
급작스런 자살로 범양상선을 물려받은 박승주씨에게 접근한 것.

당시 26세로 미국 유학중 귀국,회사 내부 갈등에 휩쓸려 있던 박씨에게
김씨는 "고위층이 보냈다"며"정치자금을 내면 경영권을 찾게 해주겠다"고
속여 지난해 9월까지 92년9월까지 매달 2천만원씩 챙겨갔다.

<>범행=박씨는 회사 경영과 관련해 회사임원들보다 김씨를 자문역으로
생각하자 김씨는 90년8월 상속세 감면의 대가로 민정당 정치자금조로
5억원을,91년1월 서울신탁은행등의 주권인도청구소송과 관련해
로비자금조로 10억원을 받는등 수십억원씩 실속을 채웠다.

특히 범양상선을 국가에 헌납하면 보증채무를 면제해주겠다고 속여
20억원을 가로채기도 했다.

지난해 4월 서울신탁은행의 전격적인 법정관리 신청뒤 김씨는 10월에
법정관리결정으로 의심을 받자 일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줄행랑을 쳤다.
또 이 낌새를 알아차린 김씨의 자금관리인 노바스코셔은행 서울지점
이호영차장은 1억원짜리 CD 4장을 횡령하기도 했다.

<>검거=박씨가 사회적 체면을 생각해 김씨의 도피 사실을 신고하길 꺼리자
김씨는 올 6월 귀국,재접촉을 시도하다 수사망에 걸렸다.

검거당시 김씨는 김모 전총리를 들먹이며 거물행세를 하며 버텼으나
추적으로 1백억원의 소재가 드러나자 "범양상선이 공매되면 인수하려고
자금을모아둔 것"이라고 말하기도.

<>범양상선=현재 박승주씨등 고박건석씨 유족들은 범양상선 경영에서
완전히배제된 상태. 관리은행인 서울신탁은행등이 법원의 결정을 받아
지난해 10월부터 법정관리에 들어가 법정관리인(한기선씨)을 파견하고
있으며 사장은 은행측이 임명한 손진관씨.

박씨 일가는 현재 범양상선 주식중 약56.2%를 갖고 있으나 그나마
법정관리정리계획안이 법원에서 인가되면 소유지분 3분의 2를 강제소각당해
소주주로 전락할 형편.

국내 최대의 부정기선사인 범양상선은 지난해 4천6백억원의 매출액을
올려,3백79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을 정도로 박전회장 사후 재기에
성공,경영이 순조로운 상태다.

결국 이번 사기사건은 박씨 일가가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무리한 욕심에서
빚어진 것으로 범양상선의 경영활동에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해운업계의 전망이다.
<정구학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