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거래소의 상장종목이 늘어 1백개를 넘어서고 시황의 호조로
매매거래가 불어나게되니 거래소수입이 많아졌다. 그래서 직원의 봉급을
올려 처우를 개선했고 75년에 이르러서는 그동안 누적된 부채를 말끔히
정리할수있었다.

이와같이 증권파동이후 누적된 부채를 정리하는데 꼬박 12년이 걸린
셈이다. 이런 추세로 매매거래가 많아지면 멀지않아 명동의
거래소시설로는 이를 다 소화할수없는 한게계에 이를것같았다. 4개의
포스트가 시장공간에 꽉 들어차있는데도 오히려 부족한 느낌이다.
시장이란 원래가 질서와 규율을 생명으로 삼는데 이대로 좌시할수없는
문제다.

그러나 겨우 누적된 부채를 정리했을뿐 새로 터를 마련해서 걸맛는 건물을
지을 형편이 못됐다. 더구나 나의 1차임기가 얼마남지 않았었다. 다시
유임이 되어서 못다한 남은 일들을 마무리짓고싶은 마음도 없지않았으나
그렇다고 재무부의 선배로서 후진들의 길을 가로막으면서까지 그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그러던차에 임기가 세달도 채 남지않은 어느날 남장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외국에 나가서 여러나라의 거래소를 돌아보고 와달라는것이다.
그래서 출국수속을 서둘렀다. 임기가 다되어가는 판에 외국나들이를
한다니 여러가지 추측과 풍문이 증권가에 나돌았다. 위로출장이
틀림없으며 돌아와서는 그만두는것이 아니냐고들했다.

거래소주변에서는 항상 주가가 올라가기만을 바란다. 또 그래야 환영을
받는다. 그러나 주가는 계속 올라갈수만은 없는것이다. 진정 주가가 계속
올라가기만 한다면 누가 팔려고 내놓을것인가. 그렇게되면 매매가
성립하지 않을뿐더러 가격도 형성되지 않는다. 항상 공급의 가격탄력성이
약하기 때문에 주가가 올라가면 떨어지게 마련이고 떨어질만큼 떨어지면
다시 반전해서 올라간다.

이와같은 일기일복에 가격의 생명이 있는것이다. 가격이 떨어지는것을
시장관리자가 돌팔이의사처럼 섯불리 손을 쓰면 주가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시장은 자생적조정력을 잃어버린다. 시장관리자가 인기에 엉합해서
서투른 수작을 했다가는 허점만 생기고 수습할수없는 사태가 벌어지고만다.
내가 시장주변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은 이사장이지만 최장수를 기록한
비결이 바로 여기에 있다.

1차임기가 끝날무렵 작심한 시찰여행은 그여정을 넓게 잡았다. 중남미를
돌아보고 뉴욕으로 간다. 뉴욕에서 런던으로 갔다가 유럽을 거쳐 동경으로
돌아오는 참으로 기나긴 여행이었다. 중남미와 유럽은 그전에 두번이나
가보았지만 증권관계로 가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이렇듯 긴 시찰여행을
통해 내가 해결해야할 과제는 거래소건물신축 주가감시업무
연수생파견이라는 세가지로 요약할수 있었다.

세계 여러나라를 돌면서 본것중에는 리우데자네이루 거래소건물이 가장
우아하고도 아름다웠다. 그러나 아담하지만 그 규모가 작아서 1백년앞을
내다봐야할 한국증권거래소건물로서는 적당하지 않았다. 또
런던거래소구관,뉴욕거래소,프랑크푸르트거래소가 다같이 육중한 건물로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으나 공간이용이 어려워 쓸모가 없었다.

프랑크푸르트거래소는 공동과같은 넓은 공간에다 구차하게 여러가지로
칸막이를 해서 현관을 들어서 이사장실을 찾는데 20분이상을 허비했다.
뉴욕거래소는 55년에 가본 일이 있는데 29년 대공황때 수도불이행에 분격한
나머지 총질까지한 그야말로 전설적인 건물이었다. 그러나 75년에 가보니
불과 20년동안에 업무량이 늘어 본건물의 양쪽날개에 고층건물을 붙여지은
탓으로 옛 모습은 찾아보기조차 힘들었다.

런던거래소는 중앙은행바로 옆에 자리잡은 역사적인 건물이었지만 이를
폐관하고 거기서 가까운곳에 새로 지어놓았다. 외모는 별것이 아니었지만
기능위주의 짜임새있는 건물이었다. 특히 질서와 규율을 존중하는
영국인답게 동선에도 세심한 배려를 한것이 눈에 띄었다.

특별관열람실에서 시장을 굽어보다가 그안에 내려가 보고싶다고했더니
안내를 했다. 그때 비로소 거래소사무실의 정문과 시장으로 들어가는 문이
따로있어 완전이 차단되어있는것을 알게되었다. 일단 사무실정문을
빠져나와 밖으로 돌아나가야 시장문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시장문앞까지는 갔으나 그안에는 들어가지 못했다. 거래소 이사장이라면
어느나라나 시장안까지 들어가보도록 하는것이 예우인데 유독 런던에서만은
들어가보지 못했다.

여기서 거래소건물의 신축방침을 굳혔다. 지금 여의도건물은
런던거래소를 많이 참고로했다. 물론 그규모는 여의도것이 더 크지만 특히
기능면에 있어서는 전적으로 런던의것을 모방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