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고을의 변사또에게 가장 무서운 사람은 암행어사 이몽룡이었다.
은행원들에게도 암행어사가 있다. 단지 공식적으로 "어사출두"를 하지않고
"탐관행원"을 탐관행원을 직접 징치하지 않았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은행원들의 업무태도를 일일이 체크하는 사람. 모니터로 통하는
이들은 은행점포에 출두한 "은행판 암행어사"로 불릴만 하다. 질높은
창구응대서비스를 위해서지만 은행원들에겐 기분나쁘고 부담스런 존재
이기 때문이다.

한일은행C지점의 박모대리(35)는 지난9일 "대어"를 낚았다. 손님을
가장하고 한달에 두번씩 찾아오는 모니터를 발견했던것. 통장을 분실해
재발급을 받으려한다는 그 손님의 행동을 보고 "예사손님"이 아니라는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 손님은 통장재발급절차를 마치고
이번엔 비씨카드창구에 들렀다. 박대리는 즉시 구내전화를 통해
"암행어사출두"를알렸다. 비씨카드 담당텔러는 다행히 눈치가 빨랐다.
손님이 물어온 "카드사용한도변경"에대해 자세히 안내해주었다.
"필요이상"의 친절을 눈치채지 못할정도로 가미한것은 물론이었다.

카드계일을 마치고 대부계로 향하던 그 손님은 갑자기 행로를 바꿨다.
책임자까지 일어나고 직원들의 시선이 자기에게 쏠린것을 눈치챈듯 싶었다.
그리고는 박대리에게 뚜벅뚜벅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조흥은행모니터거든요". 한마디로 잘못 짚은 것이었다. 조흥은행모니터가
다른은행과 비교하기위해 한일은행에 들른것이었다.

모니터란 말그대로 직원들의 창구응대상태를 있는 그대로 체크하는
사람이다. 이들은 은행원들의 손님맞이(인사), 창구응대, 업무지식은
물론 텔러및 책임자의 태도까지를 점수매겨 그 지점을 종합평가한다.
그러다보니 지점에선 여간신경쓰이는게 아니다. 누군가가 자신을
감시하고있다는 불쾌감은 어떻게보면 둘째문제이다. 당장 모니터점수가
좋지않으면 암행어사를 파견한 본점으로부터 "징치"를 감수해야한다.
모니터를 발견하는것이 또다른 업무로 굳어진건 어쩌면 당연하다.
외환은행모니터요원인 주부 김모씨(34). 그녀는 은행원이 아니면서도
한달에 12일은 은행에서 산다. 그렇다고 그냥 한지점에서 계속
머물러있는게 아니다. 하루에 보통 3~4개지점을 옮겨다닌다. 그것도
손님으로 가장해서 말이다. 그녀의 일은 지점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텔러가 "어서 오세요"라는 인사말은 건네는가, 그 인사말이
형식적인가 아니면 진짜 상냥한가를 체크하는것이 첫번째 일이다.
그후로는 눈에보이는것 귀에 들리는것 모두가 평가대상이다.
입출금에서부터 외환 대부등 고객을 상대하는 창구는 전부 직접 부닥친다.

김씨같은 모니터는 거의 모든 은행에 10여명씩 있다. 소비자연맹같은
단체에 용역을 주는 은행도있지만 최근 은행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부분 전문모니터요원을 채용하고있다. 대부분은행은 모니터점수를
창구응대서비스 80~90%, 전화응대상태 10~20%로 집계하고있다.
"감사합니다. <><>은행 <><>지점 xxx입니다"로 시작되는 은행원들의
전화받기는 바로 전화모니터의 전리품이다.

국민은행 이모씨(28.여)는 지난5월 전화 한통을 받았다. "약1천만원의
여유자금을 어떤 상품에 맡기면 좋겠느냐"는게 전화요지였다. 이씨는 그
전화가 전화모니터임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래서 온갖 규정집을 다뒤져가며 아주 친절하게 안내했다. 그러나 3일후
전화를 한 주인공이 실제 찾아왔을때 그녀는 적잖이 당황했다고한다. 그는
상당액의 예금을 가지고온 진짜손님이었던 것이다. 은행모니터제도는
지난70년대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감시당한다"는 직원들의 반발과 손님에게 그렇게 친절히할
필요성도 없어 중간에 유야무야됐다.
그러다가 모니터제도는 80년대중반부터 본격화됐다. 은행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창구응대가 무엇보다 중요한 영업무기로 등장했다. 시기도
지점당 한달에 두번으로 체계화됐고 결과도 인사나 경영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이에따라 창구응대서비스가 한차원끌어올려졌다. 그러나 이에 반비례하여
직원들의 불만은 커졌다. "보이지않는 눈"에 의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감시당한다고 생각해보면 은행원들이 느끼는 불쾌감의 정도를 쉽게
알수있다. 이같이 모니터제도는 은행의 창구응대서비스를 높이기위해선
절대 필요한 반면 은행원들의 사기를 위해선 폐지가 마땅한 "필요악"이란게
일반적 평가이다.

<하영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