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어떤 국가의 통화당국이 어느날 밤 느닷없이 통화개혁을 발표,
금년1월 이전에 발행된 지폐의 사용중지를 선언한다면 어떻게 될까.

경악과 분노. 당황과 불만. 패닉현상이 여름날의 번개처럼 전국을
강타할 것이다.

더욱이 행정적인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면 불만은 일거에
높아질 것이다.

지난 주말에 있은 러시아 중앙은행의 화폐개혁은 준비없는 개혁,무모한
행정의 모범답안이 될만하다. 도대체 정치가,관료들의 안일한 행태가
그토록 한심한가. 국외자로서도 연민의 정을 갖게 한다.

주초(26일)부터 신.구권교환을 한다고 발표했지만 블라디보스토크 같은
일부 지방은행엔 신권이 채 수령도 되지 않았다.

중앙은행의 화폐개혁내용은 92년말까지 발행된 지폐의 통용정지,1인당
교환상한액 3만5,000루불(한화 2만4,000원정도)등으로 돼있다. 교환기간은
8월7일까지로 돼있지만 당장 먹고 쓸 일용품구입을 위해 많은 시민들이
일거에 은행창구로 몰려들었다. 대혼란이 빚어졌고 통화패닉상황이
돌발했음은 말할것도 없다.

구화페의 폐기는 몇가지 이유에서 거쳐야할 과정이다. 우선 발행처가
구소련의 명칭인 "CCCP"로 되어 있는데다 디자인자체도 문제가 되어 있다.
가령 100루블 권엔 레닌의 초상이 어엿이 들어 있다. 지폐가 국가의
심벌이란 점에서 과거잔재의 청산은 당연하다. 이번 화폐개혁의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목표는 고인플레치유에 있다. 작년 러시아의
인플레율은 2,000%.

이러한 하이퍼 인플레는 올들어 월20%정도로 둔화되고 있지만 이 역시
경제개혁을 추진하기엔 가혹한 수준이다.

인플레의 원인은 가격의 2중구조와 과다한 통화발행에 있다. 작년
중앙은행의 월간 통화발행은 GNP의 40%나 된다. 가솔린의 경우 사영점의
가격은 국영점의 6배나 된다. 뒷거래가 인플레를 부추기는 꼴이다.

사실 러시아 경제는 물품량의 측면에서 올들어 개선을 보였다. 모스크바
자유시장의 그득한 진열장은 그나마 시장경제에의 이행을 보여주는
징후이다. 그런데 돌연한 조치가 상거래를 마비시키고 있다.

문제의 초점은 이러한 경제혼란이 권력투쟁의 빌미를 주어 새로운
정치불안이 야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봄의 정치 위기가 가까스로
수습되고 있는 시점에서 재연되고 있다. 옐친으로서는 새로운 위기이다.
개혁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졸속의 개혁,비전없는 개혁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