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영수반의 실각과 더불어 송요찬장군이 내각수반으로 취임했다.
송수반이 취임하면서 서둘러 해결해야할 문제가 경제원조에 관한 한미간의
합의,즉 환율인상과 더불어 6천만달러의 통화안정기금공여와
국토개발사업으로 7천만달러의 잉여농산물원조에 관한 합의를 군사정부가
재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실은 이문제의 해결을 송장군이 미국측으로부터
부탁받은 모양이다. 그래서 박의장으로부터 그렇게하기로 내락을 얻어
내각수반에 취임한것 같았다.

김영선장관이 미국에가서 재무장관을 만났을때 송수반도 거기 있었다.
따라서 원조를 얻기 위해 미국과 교섭한 저간의 경위를 누구보다도
잘알수있었다. 김장관이 송수반을 미국서 만나 여러가지 말이 오고간
모양이다. 그중에서 박정희장군이 쿠데타를 모의하고있으니 경계하라는
말도 있었다는 것이다. 원래 두사람의 사이가 나빠서 그러려니하고
흘려버릴수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미심쩍어 김장관이 장도영장군의 주선으로
박정희장군을 만나 오해를 풀었다는 풍문도 있다.

어쨌거나 송수반은 취임과 동시에 한미간의 현안타결을 서둘렀다.
재무부를 찾아갔다. 나의 후임인 이한빈차관으로부터 브리핑을 들었다.
아마 국방부에서 하는식으로 참모연구방식을 채택한것 같다. 즉
브리핑하는 당사자의 의견은 전연 곁들이지않고 사안에 대한 찬반의견과
그장단점을 분석하는 방식이다. 이차관의 브리핑은 그야말로
일품이었을텐데 이를 듣고난 송수반은 오히려 역정을 내고말았다. 다른
사람이면 모르되 김장관을 수행한 이차관이 남의 일같이 그렇게 설명할수
있느냐는 것이다. 아는 그대로의 속사정을 털어놓고 한미간의 합의를 적극
지지해야 하거늘 이럴수가 있느냐고 나무랐다는 소문도 있었다. 어쨌거나
우여곡절끝에 한미간의 현안이 드디어 타결됐다. 비록 민주당정부와
합의된 사안이지만 이를 군사정부가 존중한다고 정식으로 공표했다.
그래서 이제는 재정질서가 잡히나했더니 난데없이 워커힐호텔을
짓겠다고했다. 카지노판을 벌여 외화획득에 도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자모회에서 항의가 들어왔다. 우리들의 자녀를
한국에 보낼수 없다는 것이다.

또 난데없이 증권거래소를 주식회사제로 개편했다. 그래서
대한증권거래소의 액면 50전주권을 대주주가 16원까지 올리더니 14원50전에
공모증자했다. 그런데 이것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 공모에 응하는
사람이 적었다. 그러니 거래소의 손해도 크거니와 대주주의 주가조작에
따라가던 투자자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대증주의 주가는
떨어져서 25전까지 가고마니 명동을 진원지로 세상이 온통 뒤집어지고
말았다.

사태가 이렇게 최악의 상태로까지 치닫고보니 그동안 가려져있던 흑막이
차츰 벗겨지기 시작했다. 62년초에 일어난 일들이다. 원래 군사정부가
국내외의 여론때문에 군정을 마냥 끌고갈수가 없었던것 같다. 그래서
민정참여를 결심하고 공화당사전조직을 획책한것같다. 그러자면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니 증권시장을 조작해서 이를 조성하자는 외부의 권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여기에 증권시장의 생리를 잘모르는 군인들이 혹하여
말려든것 같다. 원래 정치자금이란 특정인을 상대로 이권과 결부해서
거둬들이는것은 모르되 불특정다수인을 상대로 여러사람으로부터
거두어들이는 자금이란 그야말로 성금이어야한다. 그런데 어떻게
자금마련을 목적으로 투기를하는 사람을 상대로 시세를 조작,이들의
희생하에 거대한 정치자금을 조성할수 있을까. 참으로 황당무계한 망상이
아닐수 없었다. 증권시장이란 원래가 경쟁매매를 대전제로 하고 있다.
따라서 큰손이 시세를 조작한다해도 시간문제이지 결국은 시정되고 마는
것이다.

또 증권시장이란 팔기를 잘해야 돈을 버는 법이다. 61년 겨울부터
일기시작한 대증주의 주가조작은 불과몇달사이에 액면 50전의 대증권을
대주주의 횡포로 16원까지 올려놓았지만 결국 팔리지 않아 공모증자에
실패,주저앉고 말았다.

대주주가 시세를 치켜올리기 위하여 대증권의 매진작전을 폈는데 이에
필요한 증거금을 수표로 내면 지체없이 이를 은행으로 돌려 월말의
수도대금으로 대비해야한다. 그런데 매진작전을 주도하는
대주주증권회사의 수표를 은행에 돌리지않고 거래소가 마냥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월말에는 수도대금이 부족하게되니 군사정부와 교섭해서 변칙적으로
한국은행으로부터 특별융자를 받아냈다. 그러기를 몇번 거듭하는 사이
주가의 조작은 가능했지만 결국은 대증주의 공모증자에 실패,공화당의
정치자금조성도 무산되고만것이다. 송수반이 그와같은 변태적인 특융을
중지하라고 몇번 지시했지만 듣지않으니까 분개한 나머지 사표를 내던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