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듣는 새소리 물소리 바람소리들이 그 어떤 교향곡보다도 더
듣기좋고,장엄한 산의 모습이나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가 그 어떠한
그림보다 아름답고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때문에 한때는
산이 좋아 틈만나면 산을 찾은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좋아했던 산과
자연이지만 정치판에 뛰어든후 15년 동안 여러가지 우여곡절을
겪고,한치앞도 내다보지 못했던 나날을 지내면서 정기적으로 산과 자연을
접할 기회를 갖지 못하고 항상 마음속으로만 계획을 세워보곤 했었다.
일요일에도 일을 해야했던 생활속에서 잠시 짬을 내어 북한산 관악산
정도를 찾는것이 고작이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뜻맞는 친구끼리 같이
취미생활을 한다는 것은 엄두조차 낼수 없었다. 다만 대학시절부터
변함없이 만나고 있는 친구들과 종종 소줏잔을 기울이며 산에 대한 향수를
달래곤 한다.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70년대초는 잔뜩 찌푸린 회색빛 하늘처럼
암울했던시절이었다. 위수령이 선포되고 대학의 모든 학회활동이
중단되었다. 말하자면 유신체제의 서막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서울대법대안에는 몇몇 "용기있는" 학우들이 앞장서 사회정의의
실현을 모토로 "경제법학회"를 창립했다. 유신체제반대는 물론 사회과학
전반에 대한 체계적인 공부와 농촌 공장활동등 현장경험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기틀을 마련해 보자는 취지였다고나 할까.

우리가 싹을 틔웠던 경제법학회는 유신체제 막바지에 이르러 서울대학교
전체를 이끄는 가장 영향력 있는 학회중의 하나로 성장해 있었으나 많은
선후배들이 상처를 받고 있었다. 80년 "서울의 봄"도 잠깐,또다시 기나긴
겨울이 계속되었지만 우리의 만남은 계속되었다. 우리는 그때 "상처받은
법대인"들의 모임이라는 자조섞인 농담들을 주고 받으면서도 긍지를
느끼면서 만났다.

공직에 진출해있는 선후배들도 가끔 용감하게 모임에 참석하여 우리를
위로 격려해 주기도 했다.
젊은 날의 우정과 추억과 낭만을 간직하면서 그때의 꿈과 이상을 언젠가는
펼쳐보자고 만났던 많은 선후배들,상처받은 법대인들이 이제는 새로운
정치분위기 속에서 하나 둘씩 조심스럽게 사회에 적응해 나가고 있다.

캠퍼스에서 만날때와 같은 밝고 건강하던 모습을 되찾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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