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가장 가까운 이웃은 중국이다. 러시아도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그 심장부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가까운 이웃이라고는 할수
없다. 광복이후 한반도는 분단되었다. 한국으로서 보면 북한이 중간에서
가로막고 있어 가까운 이웃은 중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비행기를 타보면 그것을 알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갈수 있는
나라가 일본인 것이다.

가장 가까이 있다는 것은 당연히 가장 우호적이어야 하지만 사실은 리해가
밀접되어 있어 오히려 먼 나라보다 분쟁의 소지가 더 많다. 미국과
멕시코가 그랬고 프랑스와 독일도 그랬다. 한국과 일본은 더 그랬다.
원교근공정책이라는 것도 이런 연유인지 모른다. 텃밭을 서로 차지하려는
우회정책이었을 것이다.

이제 원교근공의 시대는 지났다. 적어도 경제적 차원에서,그리고 경제가
주축이된 시대에선 가까운 나라끼리의 결속이 가장 중요하게 되었다.
가까운 이웃이어서 전쟁을 반복했던 미국과 멕시코,그리고 캐나다가 지금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으로 결속하고 있다. 국경을 맞대고 있어
역사적으로 견원지간이었던 프랑스와 독일도 이제는 사이좋게 EC통합을
주도하고 있다. 시대는 근공원교가 아니라 지역적 블록화를 주류로
하고있다.

그런데도 한국과 일본은 종전이후 줄곧 구원을 풀지 못하고 있다.
실질적으로는 관광객들의 상호방문이나 경제관계가 그야말로 이웃처럼
밀접하게 되어 있는데 표면적 명분과 감정은 서로 가장 미워하는 나라처럼
되어있다. 이것이 최근엔 두나라관계의 질적 심화를 가로 막고 있다.
일본은 이미 한국을 우회하여 동남아와 중국으로의 진출에 괄목할 성과를
거두어 마치 한국을 포위한 듯한 형상이다. 한국도 일본을 비켜서
선진국이 아닌 비교적 후진 시장에서 탈출구를 찾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런 형국이 두나라의 진심이어서는 안된다. 가까운 이웃끼리
우호와 협력을 다지지 못하면서 먼 나라와만 친한다는 것은 일시적으로만
가능한 허구다. 한국으로서는 바로 옆에 있는 세계최강의 경제대국을
활용하지 못하면 결코 현명하다고 할수 없으며,일본으로서는 바로 이웃을
경원하면서 먼나라와 협력하는 것이 이기적 위선일수 있다.

이런 모든 것은 두나라사이에 엉켜있는 감정의 응어리가 연출하고 있으며
두나라 국민은 거기에 포로가 되어 있다.

다행히 지금 한.일간에는 새로운 기운이 움트고 있다. 한국의 새
집권자로 등장한 김영삼대통령은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강한 의욕을 천명했다. 전정권에서도 말로는 수없이
되풀이한 얘기지만 문민정부로서 큰 부담없이 이를 실현하겠다고 한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총선으로 변모한 일본정계도 대한관계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편향의 사회당이 우선 대한관계 개선쪽으로 돌아섰고 비자민
신당쪽에선 과거 일본의 잘못을 한국에 솔직히 사죄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정부도 정신대 한국인피해자의 증언을 청취하기 위해 관리2명을 한국에
파견시키고 있다. 내달엔 종군위안부의 강제연행을 일부 인정하는
일본정부의 조사보고서가 발표될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이와 같은 한.일간의 새로운 해빙무드를 역사의 매듭풀기로 결실하게
해야한다.

63년 드골 프랑스대통령과 아데나워서독수상이 맺은 "엘리제조약"과 같은
성과를 거두게 해야 한다. 독.불의 역사청산은 양국의 운명뿐아니라
유럽현대사를 바꿔놓는 바탕이 되었다. 두나라가 EC통합을 주도하게된
기틀이 거기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한.일의 앞날에도 다이내믹한 아태시대가 대기하고 있다. 미국까지도
탈구입아를 겨냥하고 있다.

우리정부가 대일역조개선대책을 지금까지의 수입억제위주에서
수출촉진으로 바꾸기로 한것도 의미가 크다. 일본을 겨냥한
수입다변화품목을 절반으로 줄이고 그대신 수출확대에 적극 나서기로
한것은 일종의 우호공세이며 자신감의 회복이다. 이 조치에 대한 일본의
긍정적 응답이 기대된다. 자신감은 관대함을 낳고 관대함은 우호를 쌓게
된다는 논리가 이번에 입증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한.일양국민들은 서로가 딴곳으로 땅을 옮겨갈수 없는 이웃이다.
후손들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앞으로는 살림살이도 비슷해져야 우호를 더
다질수 있다. 일본의 1인당 GNP가 3만달러면 이쪽도 어지간히 그에
따라가야 한다. 그러려면 이제 일본은 인색한 사과에서 한발짝 내딛고
한국은 고식적 반일에서 벗어나 이웃의 경제단위와 마음을 터놓고 교류해야
한다. 태평양시대에서 변두리로 몰리지 않기 위해서도 두나라가 서로
역사의 응어리에 짓눌리지 말아야 한다.

한.일간에 새로 전개되고 있는 역사청산의 움직임이 새 아태시대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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