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사 김영선장관이 옥중에서 풀려나 한일회담이 성사되도록 적극
협력한다해도 성공은 못했을것이다. 왜냐하면 일본의 전후처리문제에
있어서는 확고한 기본방침이 이미 서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일본이
한국동란에 힘입어 경제가 부흥하기 시작했다고는 하지만 그당시
외화보유고가 10억달러를 좀 넘는 형편이었다. 따라서 배상요구가 비교적
적을것으로 예상되는 태국이나 인도네시아부터 시작,가장 많을것으로
생각되는 한국과의 타결은 끝으로 미룬다는 방침이었다.

미국도 이와같은 방침에 찬성한것같다. 필리핀에 대해 미국은 노골적으로
일본에 과도한 배상청구는 하지말라고까지 했다. 그대신 필리핀에
보다많은 미국원조를 고려하겠다고했다. 한국정부가 미군정청이 공포한
군정법령5호,즉 한국에있는 일본인재산은 군정재산으로 귀속한다는 조항에
대한 유권해석을 미국정부에 요구했더니 한일간에 타협해서 결정할
문제라고 회답하기도 했다.

실은 1차대전후 독일에 대한 과도한 배상이 독일로하여금 공산혁명의
일보직전까지 몰고갔고 그래서 미국의 모라토리엄이 세계적대공황으로
확산된 쓰라린 경험때문에 2차대전의 전후처리에 있어서는 패전국으로부터
배상을 받지않는다는것이 미국의 확고부동한 방침이었다.

이에따라 일본도 외화보유에 여유가 생기면 점차적으로 그 범위안에서
타결한다는 방침이었다. 그러니 우선 연락사무소부터 서울에
설치하자는것이 그들의 본심이었으며 그래서 우선 급한대로 상업차관부터
서서히 풀어주자는것이 그들의 속셈이었을것이다. 그때 떠돌아다니는
풍문으로는 8억달러선에서 이야기가 오고가지 않을까하는 추측이었다.

61년5월로 접어들자 정국도 차츰 안정되기 시작했는데 나의 모교인 일본의
와세다대학에서 축구단이 친선경기를 위하여 내한했다. 와세다대학의
축구팀은 그 주장이 한국사람인 경우도 있었고 유명한 김용식선수가 활약한
일도 있어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래서 친선경기를 위하여 해방후
처음으로 내한,경기가 토요일오후에 있었는데 참관하지는 못했다.
선거사범의 처리를 위하여 특별재판소를 설치하는데 필요한 예산조치때문에
바빠 모처럼의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후 며칠이 지난다음 내일이면
일본으로 떠난다는 날 최문환 서울대상대학장의 주선으로 축구단을
인솔하고온 단장 소송교수와 송별의 회식을 갖게되었다.

소송교수는 영국에서 "장원의 붕괴와 도시국가의 발전과정"을 연구하고
돌아와 경제사를 가르쳤다. 나도 그분의 강의를 들었었다. 같이 회식에
참석한 이상백IOC위원장과는 와세다대학의 동기생이었다. 해방전에는
일본체육회이사일뿐 아니라 모교에서 시간강사를 겸하고 있었다. 그래서
특히 가까운 사이인것 같았다. 그외의 동창몇분과 회식을 하는데 주흥이
무르익자 소송교수는 짤막한 에피소드를 털어 놓았다. 자기는 영국서
공부를 했기때문에 영국유학을 한 윤대통령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윤대통령을 만나보았더니 어찌나
의례적인지 별로 인상에 남는것이 없다는 얘기였다. 윤대통령이
과묵한데다 통역이 서투른 탓도 있었으리라 짐작도 해본다. 그런데 별로
기대를 하지않은 장면총리를 만나보니 한국에 이런 훌륭한 지도자가 있구나
하고 감명이 깊었다는 것이다. 장총리는 국제경기는 승패(win or lose)가
문제가 아니라 친선에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아마 그때 일본이
진것같다. 이를 위로하기위한 외교적 언사이겠지만 장면총리의 유창한
영어와 정확한 어휘에 매료된 것같았다. 특히 외국사람으로서 "lose"라는
점잖은 어휘를 택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와같이 훌륭한 지도자를 만났으니 한국의 장래가 밝기만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거듭거듭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외교적 언사일수도
있지만 한국의 장래가 밝기만하다는 찬사를 듣고 불과 몇시간만에 5.16으로
제2공화국이 무너져버렸으니 일이 이렇게 될줄이야 누군들 상상이나 할수
있었겠는가. 술자리에서 돌아와 그날따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새벽녘
아직 먼동이 트기전이다. 총소리가 들려왔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총격전이 있었던 것같다. 내집이 인왕산 산자락을 등지고 있었기에
메아리지는 총소리가 마치 인왕산에서 이북의 빨치산과 총격전을 하지않나
하는 착각도 했다. 불안한 가운데에 백방으로 알아보려했으나 전화는
완전히 두절되고 말았다. 나의 상상력을 총동원하여 암중모색해보았으나
알길이 없었다. 라디오에서 군가가 울려퍼지면서 장도영중장이
혁명최고회의의장에 취임,모든 국가의 권력을 장악했다고 방송했다.
공산게릴라는 분명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도대체 장도영참모총장이 혁명을
일으켰다니 참으로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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