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 출범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오는 과학기술진흥에 관한
정책과 거듭되는 관계자대책회의,일일이 열거하기조차 어려운 수많은 약속
들은 과학기술인들의 눈을 어지럽게 할 정도로 화려한 것들이다.

무슨 무슨 연구개발사업에 언제까지 얼마를 지원하겠다,연구활동에 따르는
장애요인을 제거해주겠다는등 새 정부의 과학기술정책담당자들이
과학기술진흥에 쏟는 정성은 세계과학기술대전을 성공적으로 치르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성 싶다.

그러나 돈줄을 쥐고있는 소위 힘있는 부처장들이 능동적으로 힘을 써주지
않으면 어느것 하나 풀릴수 없는 것이 과학기술계의 문제점들이다.

과학기술인들이 아무리 그럴듯한 구상을 짜내봐야 그것은 예산당국에 의해
받아들여져 예산으로 집행돼나오기 전에는 공염불일 뿐이다.

과학기술정책을 다루고 있는 한 고위관계자는 우리국가의 지도자들이
과학기술 진흥이라는 "비인기 과제"에까지 신경을 쓰려면 새 정부의
집권후반기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인상을 받고 있다고 귀띔한다. 그것도
전반기에 개혁작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고 새 정권이 탄탄한 기반을 얻어
다른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된다는 가정하에서나 가능할 것이라는 얘기다.

요즘 정부가 보여주고 있는 겉과 속이 다른 과학기술진흥시책을 보고
있으면 이 고위관계자의 말이 너무도 솔직한 실토라는 생각이 든다.

우선 대통령의 선거공약인 청와대 과학기술 특별보좌관 신설문제는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장을 비상임에서 상임으로 바꾸고 청와대에
과학기술비서관 하나를 두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특보의 힘이 별것이냐고 하겠지만,수석비서관이 없는 분야에서 중요한
문제를 두고 부처이기주의가 첨예하게 대립될 때 대통령의 힘을 업은
특보가 이를 조정해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정부내에는 과학기술진흥을 위해 그런 힘을 쓸만한
인물이 없다. 과학기술처장관이 있다고 하나 그의 말은 돈줄을 쥐고있는
다른 힘있는 각료들에게 먹혀들지 않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그 단적인 예를 과학기술혁신 특별조치법의 난항과 내년도 과학기술
예산을 다루고 있는 예산당국의 소극적인 태도에서 본다.

당초 정부는 김영삼대통령이 선거공약으로 내걸었던 과학기술투자의
획기적증대를 이행하기 위해 오는 98년에는 연구개발투자액이 GNP의
4%수준에 이르도록 매년 투자액을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었다.

그러나 과학기술 예산의 연도별 증가율을 법제화하는 내용을 담은
과학기술혁신 특별조치법안이 경제기획원의 이의제기로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겉으로 드러난 반대이유는 어느 특정분야만 집중적으로 예산을 늘려주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는 것이나 자기들의 고유권한인 예산편성권이
침해받는다는 속좁은 부처이기주의가 개입돼있음을 부인할수 없을 것이다.

그대신 경제기획원은 과학기술부문 예산을 연평균 22%정도 증액해 오는
97년에 GNP대비 과학기술투자를 3%수준이 되게 한다는 "과기부문
중기재정계획안"을 내놓고 있다. 이는 대통령선거공약사항인 4%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새 대통령이 취임직후의 "신경제 특별담화"에서 보여줬던 과학기술진흥을
위한 결연한 의지도 사정과 개혁의 한파에 얼어붙었는지 구체적인 실행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는 느낌이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대통령자신이나 기자들이나 과학기술에 관해서는 한마디의 언급도 질문도
없었다.

민자당이 내놓은 "대통령취임 100일 주요치적"이라는 홍보책자에는
청와대의 식단이 간소화됐다는 내용까지도 "주요치적"으로 등장하고 있지만
과학기술에 관한 치적은 단 한마디도 들어있지 않다.

개혁이 끝나면 그때가서 볼것이 아니라 개혁과 과학기술진흥은 함께 가야
한다.

대통령도 말했듯이 개혁과 경제회복은 선후가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는 이미 기술대전에 깊숙이 휘말려있고 이 소리없는 전쟁은 우리의
개혁이 끝날때 쯤이면 이미 승패가 나 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