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원(신원)이란 말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쓰이는 말이 아니다. 국어사전을
보면 "원통한 일을 풀어버림"이라고 풀이하면서 유사한 용어로
신원설치(원통함을 풀고 부끄러운 일을 씻어버리는 일),또는
설분신원(줄여서신원)등을 들고 있다.

우리 역사상 신원운동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조선조 고종30년(1893)1월에
동학 교조 최제우의 신원을 정부에 진정한 사건이다. 조선조 후기는
정치의 부패 탐관오리의 행패와 세금의 과중등으로 농민은 심한 고통을
받게 되었고 외세의 침투는 위기의식을 가중시켜 동학은 광범한 계층의
민중을 결집시키는데 성공하였다. 그러자 정부는 교조 최제우를
혹세무민의 죄로 처형하였고 이에 불복하여 제2대 교주 최시형은 교조의
신원운동을 전개하게 되었던 것이다.

교조의 신원운동은 동학란(또는 동학혁명)으로 발전되었고 결국은
청.일전쟁의 도화선이 되고 말았는데 신원운동의 내용을 현대식으로
풀이하면 교조 최제우의 명예회복과 동.서학 혼동에 의한 동학탄압의
중지,즉 종교의 자유등이라 할수 있다. 이처럼 신원이란 그 전제로
원죄,즉 억울하게 쓴 죄가 있어야 한다.

서울고법은 14일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과 관련하여 유족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가족권의 하나로 신원권이란 개념을 도입하여
원고인승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법 민사2부는 "혈연으로 맺어져 고락을
함께하는 가족공동체에서 가족중 누가 뜻밖의 죽음을 당했을 경우 나머지
가족들은 그 진상을 밝혀내고 그 결과 억울한 일이 있었을 때는 법절차에
호소해 그 원한을 풀어줄 의무가 있다"고 판결하였는데 신원권이란 개념이
대법원에서 수용될지 여부가 주목된다.

원래 형사피의자는 유죄가 확정되기 전에는 무죄로 추정된다. 박종철군은
결찰의 수사과정에서 고문으로 사망한 경우이므로 말하자면 무죄한 사람을
국가권력의 남용으로 치사케 했다고 할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원죄이므로
신원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수 있는 일이다.

신원권이란 낯선 개념이 법리적으로 성립될수 있느냐는 것은 앞으로
대법원에서 가릴일이지만 이같은 공소심의 자세는 국민의 기본권의 신장에
기여할것이란 점만은 확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