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대작가가 독특한 구성의 역사소설을 출간해 주목을 끌고 있다.
92년 데뷔작 ''내가 누구인지 말할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로 포스트
모더니즘 논쟁, 표절시비의 한가운데에 서있었던 이인화씨 (28.본명
류철균)가 ''영원한 제국''을 출간했다. (세계사 간)

"영원한 제국"은 18~19세기 격동의 조선정치사를 철학.사상논쟁의
차원에서 해석하는 진지함이 담겨있다. 최근까지 유행한 야담류역사소설의
통속성을 벗어나고 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자못 신세대적이다.
주제의식을 가장 잘 드러낼수 있는 허구화를 위해 기존의 기법을
명시적으로 참조하고 있다.

스스로 움베르토 에코,코난 도일,존 딕슨 카,로베르트 반 홀릭등
추리소설작가들의 작품에서 각종 모티프를 응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소설
중간 중간 작가가 개입해 현재와의 관계,역사적 사실,고전문헌의
해석,철학적 이론등을 나레이터처럼 해설하기도 한다. 긴밀한 구성을 위해
주역의 8괘 24천간등 상수를 응용,8장으로 꾸몄고 그 안에 하루 24시간의
일을 촘촘히 담았다.

주인공은 정조 당시 규장각 대교였던 젊은 선비 이인몽.
소설은 92년 6월 작가가 일본 동경문고에서 우연히 이인몽이 남긴
"취성록"이란 문집을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취성록"에는 정조의
친위쿠데타실패기가 담겨있었다.

"때는 정조 24년인 1800년 정월. 정조가 적서차별철폐,노비제도혁파,
과거제도개편,상공업진흥,세제개혁등 개혁정책을 밀어붙이고 아버지 사도
세자의 복권을 위해 힘쓰는등 수구세력인 노론과의 정치적 갈등이 정점
에 달했던 시기이다.

19일 새벽 규장각서고에서 며칠째 영조의 글을 정리하던 검서관 장종오가
원인모를 죽음을 당한다. 이인몽과 형조참의 정약용은 이 사건이 영조의
"금 지사"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된다. "금등지사"는 노론의 모함으로 아들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죽인 잘못을 뉘우치고 당시 사도세자를 모함한
노론의 만행을 기록해 남겼다는 문제의 글이다. "금등지사"를 찾아없애
정치적 위기를 넘기려는 노론측과 사라진 "금등지사"를 찾으려는 정조와
남인들의 분주한 움직임으로 신경전이 숨가쁘게 진행된다. 결국 이 사건은
노론의 오판을 노린 정조의 정치적 승부수였음이 드러나는데."

역사에 따르면 그해 6월 정조는 폐렴으로 급사하고 만다. 정조 사후
기호남인들은 대부분 처형되고 영남남인들은 낙향한다. 영남지방에서는
지금까지도 정조의 갑작스런 죽음이 노론에 의한 독살이었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그러나 검증할 길은 없다.

"정조의 개혁정치는 조선이 자주적 근대국가로 성장할수 있었던 마지막
가능성이었습니다. 정조가 사망한 후 조선은 일본과 달리 유신의 기회를
가질수 없었지요"
노론을 중심으로한 주자학절대주의와 정조의 유교근본주의. 이 둘은 각각
붕당정치와 성왕정치의 철학적 기반이돼 서로 충돌했다.

"근대국가성립 직전에 세계사는 절대군주제의 과도기를 거쳤지요. 유럽의
중상주의와 일본의 명치유신이 그것입니다. 하.은.주 삼대의 성왕정치를
표방,영원한 제국을 꿈꾸던 정조의 좌절로 조선의 자주적 근대화는
불가능해져 버렸습니다"

이씨는 당시 남인으로서 정조의 좌절을 목도했던 정재 유치명(1777~1861)
의 9대손이다.

<권영설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