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문제가 타결되고 통화안정기금의 명목으로 64만달러의 원조를
받게되었으니 우선 급한대로 어려운 고비를 넘긴것같았다. 한숨
돌리고있던차에 미국의 재무장관이 김영선재무장관을 초청했다. 단순한
행정가가 아니라 의회정치의 실력자로서 추진력이 있는 사람을
만나보고싶다는 것이었다.

김장관은 이한림예산국장을 대동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김장관은
미국에서 한국의 민주주의가 소나무와 같아서 죽지않고 끈질기게 살아남을
것이라고 인사를 겸하여 말한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이름이
생각나지않지만 그당시 케네디대통령정부의 재무장관은 월가의 실력자로서
김장관의 인사말을 듣고 몇마디 주고받은 다음 즉석에서 7천만달러의
원조를 약속했다.

물론 일반적인 원조는 아니다. 미공법480조에 의한 잉여농산물의 공여를
약속한것이다. 잉여농산물을 한국에 공여하면 이를 처분,그판매대금을
적립해 국토개발사업에 충당한다는 조건이다. 그것도 그사업에 전액을
충당한다는것은 아니다. 그반액을 한국정부가 부담하면 나머지 잔액을
대충자금으로 내준다는 조건이다.

그렇게 선선하게 추가원조를 약속하니 김장관도 고맙다는 말밖에 구구하게
더보탤말이 없었다. 거기다 7천만달러도 잠정적인 한도이지 한국정부가
소화만 해낼수있다면 공법480조에 의한 원조는 얼마든지
추가해주겠다는것이었다.

김장관은 국토개발사업을 위하여 지원을 아끼지않겠다는 약속이 정말
눈물겹도록 고마웠을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부산정치파동때부터 정부의
박해를 받아 고 계속 이어지는 정치탄압으로 선거에서 마저 실패,야인으로
전락했다. 그때부터 국토개발만이 경제건설에 대한 국민의 참여의식을
드높일수있는 국가사업이라고 그는 거듭 강조했다. 민주당정부의 각료가
되어 갑작이 만들어낸 계획이 아니었다. 그러니 국토개발사업이야말로
김영선의 신안특허상표가 붙어 마땅한 것이다.

김장관은 미국서 돌아오는 즉시 가칭 국토개발사업추진본부를 만들고
재무부일은 제처놓고 이일에 전념했다. 내가 할일은 이일을 추진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었는데 환율인상으로 인한 관세수입의
자연증가만 가지고도 충분했다. 또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기전에 우선
기세부터 올려야했기 때문에 국토개발대를 조직하고 나도 단복으로
갈아입고 시가행진에 참가했다.

한편 예산심의의 법정시한은 다가오는데 국회의 심의가 지지부진해서
걱정이 태산같았다. 나는 사무실을 거의 비우다시피하고 국회에서
하루하루를 보내야만했다.

김장관이 국회분과위원회에 나오면 당내의 반목과 대립이 앙금으로
되살아나 주제에서 이탈한 정치적발언이 더욱 무성해졌다. 야당의원의
정치적발언이라면 의당 그러려니하고 단념할수도 있었겠지만 여당의원의
그와같은 발언은 사무차관인 나조차도 듣기가 참으로 거북했다. 그래서
김장관은 되도록이면 국회에는 안나왔으면 했다. 또 그렇게 하라고
권했다.

그 바람에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발언이 많이 줄어들었고 그대신 내가
도맡아 발언하는 바람에 제2공화국국회(분과위원회포함)에서
정부위원으로서 나의 발언횟수가 가장 많은 기록을 세우기도했다.

김장관이 아무리 국회출석을 피한다고해도 예산을 주관하는
주무장관으로서 속이 펀할리가 없었다. 더구나 제2공화국헌법에는
법정시한까지 예산이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내각이
총사퇴하도록 되어있었으니 말이다.

민주당정부로서는 그야말로 정치생명을 건 일대도전이 아닐수 없었다.

막후에서 협상도하고 심지어 술자리에서 싸움도 벌였다. 그래도
예산심의가 지지부진하니 드디어 김장관은 병이 나고 말았다. 그래서
신년도예산안을 참의원에 상정하는 날은 김장관이 출석하지 못하고 내가
대신 예산연설을 대독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나도 과로한 탓인지
쓰러질것만 같았다. 아침부터 국회에 나가 밤늦게까지 있다보면 눈이
충혈되고 앞이 잘보이지 않았다. 관자놀이가 쑤시며 귀가 멍멍거려서 말이
잘 안들렸다. 그래서 늘 신경안정제를 지니고 다녔다.

하루는 예산안결산위원회에서 상공부소관예산을 심의하는데 밤늦도록
주요한장관이 앉아있었다. 몹시 피곤한 기색이었다. 그때 이미 그분의
나이가 환갑이었으니 40이 갓넘은 나도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 그분에게는
무리였다. 짜증이 나는 모양이었다.

혹시 국회를 자극하는 발원을 해 모처럼 잘 차려놓은 방상에 재를
뿌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돼 내가 가지고있던 안정제를 내놓았더니 "나도
가지고 있다"며 웃어넘겼다.

이 일로 스트레스가 풀렸고 상공부소관의 예산심의도 무사히 끝났다.
얼마나 속이 시원했으면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갔으랴. 결국 주장관은 내
외투를 잘못 알고 바꿔 입고 나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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