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임원들이 올해 LA 동경 프랑크푸르트에서 잇달아 가진 회의는
다른 그룹에 매우 놀라운 것으로 비춰졌다. 2백명가까운 임원이 참석
한 프랑크푸르트회의의 경우 비행기요금만도 몇억원이나 들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엄청난 비용을 들여 해외에서 회의를 열 필요
가 있느냐는 부정적 시각도 없지않았다.

프랑크푸르트회의가 열리던 지난 6월19일부터 21일까지 삼성전자 수원공장
세탁기라인을 불량원인조사를 위해 멈춘것도 비슷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기업이미지에 결정적인 흠을 가져올 "모험"마저 주저하지않는 새로운
"발상"에 대해 경쟁업체관계자들은 충격적이었다고 말한다.

이같은 일련의 삼성그룹 움직임은 한마디로 그들 특유의 가치관을
과감하고 발빠르게 행동으로 옮긴 것이라는 점에서 충분히 눈길을
끌만하다.

삼성그룹이 지난달 9일 밝힌 제일제당계열분리,제일모직의
삼성물산합병,삼성시계등 그밖의 12개계열사정리계획도 재계에 충격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삼성은 이런 계열사정리를 통해 앞으로 전자와 중공업 건설 항공등
엔지니어링사업,화학이 축이 되는 3대핵심사업외에 금융 정보서비스사업을
중점 육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대 이병철회장시절 소비재중심으로
성장해온 그룹의 업종구조를 21세기형 첨단고부가가치사업구조로
개편한다는 뜻이다.

지난 91년11월의 전주제지(지금의 한솔제지)신세계백화점에 이은 이번
제일제당.모직등의 분리및 합병도 같은 맥락에서 비주력사업의 정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이같은 계열분리가 단순히 이건희회장 형제간의 재산분할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시각도 많다. 분리된 기업의 경영권이 모두 형제들에게
옮겨졌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삼성의 계열분리 작업이 "신경제"의 정책목표인
소유분산촉진 업종전문화와도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이다. 삼성은 "문어발
자르기"의 모범을 보임으로써 신정부의 대기업정책에 부응하고 그룹의
일관된 "사업구조 고도화전략"추진을 가속화 하겠다는 것이다.

삼성은 앞으로도 이같은 비주력사업의 정리를 계속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이건희회장이 취임이후 주장해온 "해서는 안될 사업""하지
않아도 될 사업"을 과감히 배제하고 "꼭 해야할 사업"에 힘을 모아
업종전문화를 통한 21세기형 사업구조로의 전환을 겨냥하고 있다.

삼성은 내년중으로 예정된 2단계의 대규모 중소기업형 사업이양을 앞두고
현재 이양대상품목및 사업선정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은 이미
지난89년부터 91년까지 3년동안 연간 구매규모가 1조5천억원에 이르는
1천2백41개품목의 생산을 중소기업에 넘겼었다.

또 지난 3월에는 모든 납품업체에 대금을 60일이내에 은행을 통해
지급키로 하고 삼성생명이 중소기업지원자금 1천억원을 조성,융자키로
했다.

기협중앙회가 추진하고있는 중소기업연수원 건립과 운영을 지원,97년까지
9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며 이 연수원을 통해 삼성의 생산기술 설계기술
컴퓨터응용기술등을 중소기업에 적극 이전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밖에도 삼성은 문막 안성 선산에 협력업체 협력단지조성을 추진하고
있다. 협력업체에 자금 기술 정보판매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중소기업과의
해외동반진출도 계속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삼성이 이처럼 다각적인 중소기업지원활동을 펼치고 있는것은 본질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대립 주종"의 관계가 아니라 "협력 보완"의 관계에
놓여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또한 "신경제"의
핵심과제인 중소기업경쟁력강화와 무관하지 않다.

이건희회장은 지난 5월 중소기업경영자를 대상으로한 강연에서 "대기업과
협력업체는 부부사이로 협력업체가 공급하는 부품의 질에 의해 최종제품의
품질수준이 결정된다는 점을 인식,서로 적극 도와야 할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회장은 또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한배에 탄 같은 경제행위의 주체라는
관점에서 동반자의식을 갖고 역할분담을 해나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삼성은 올해 설비투자를 3조원,연구개발투자를 1조1천억원으로 예정하고
있다. 지난해말 계열사별 투자계획을 취합,당초 설비투자를 2조5천억원
정도로 잡았으나 연초 부문별 사장단회의를 통해 5천억원이나 늘렸다.
투자증가분은 대부분 전자의 반도체 정보통신,중공업의 상용차,항공등의
주력사업부문에 배정됐다. 삼성의 사업구조고도화의지를 알수있는
대목이다.

<추창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