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시철마다 지방고등학교중에서 최고명문으로 자주 인구에 회자되는곳
이 다름아닌 필자가 38년전에 졸업한(전남)순천고등학교이다.

전성기에는 서울대학교만 65명을 입학시킨일이 있었고 최근에도 매년
40~50의 합격자를 내고 있으며 다른 사립명문에도 그에 못지않은수의
입학생을 배출함으로써 번번히 지방고등학교로서 명문합격율 1등을
차지하고 있다.

서울에 살고 있는 동문들이 그 몹쓸 지역감정으로 움추려있다가도
모교이야기만 나오면 거깨가 으쓱해지는 것이 모두 후배들의 덕택이라
할수있다.

호남지방에서는 광주고와 전주고등 전통있는 고등하교출신들이 대표성을
갖고 있었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대학입시에 관한한 순천고출신들은 그들 앞에서 조금도 움추려 들일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순천도 제법 성장해서 인구 20만을 헤아리면서 도청유치를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졸업하던 1955에는 인구 5만에 불과한 소도시였다. 그작은
도시에서 1백50여명에 불과한 순고4회 졸업생가운데 15명이나 서울대학에
입학했던것을 보면 이미 그때 명문으로서의 기초가 잡혔던 셈이다.

그때 입학한 동기들중에는 순수문학을 지향하고 있는 소설가("달궁"
작가)이자 영문학자인 서정택군(필명 정인-문리대영문과),월남전때
외과의사로 명성을 날렸던 김창은군(전순천병원장-의대),재무부에서
오랫동안 관료생활을 하다가 애석하게 일찍 작고한 김우탁군(전
국민신용카드 수석부사장-정치학과),은행계에 진출한
조동회군(중소기업은행 교수부장-상대)과 박병규군,(수출입은행연구위원-
법대)감정사로 활약하고 있는 김종기군(전국감정사협회회장-법대)농대의
양목승군과 필자(문리대 철학과)가 있다. 그러나 이 동기생들도
졸업직후에는 자주 만나는 자리를 가졌으나 이제는 경향각지로 흩어져
좀처럼 한자리에 모이기 어렵다.

10여년전부터는 순고4회동기중에서 월우회라는 모임을 만들어
매월한차례씩 모임을 갖고 옛정을 나누며 회포를 풀고 있다. 월우회
멤버로는 위에 지적한 조 박 김 서 정군외에 졸업과 동시에 육사에 들어가
3성장군으로 예편한 정숭열군(중앙고속사장),검찰계에 몸담았던
김종옥군,초년고생끝에 개인사업을 크게 일으킨 임원의군,약사시인으로
필명을 날리고 있는 김두환군, 느행계에 몸담고있는 홍사홍군(제일은행
검사역),역시 은행계에 있다가 사업가로 변신한 김우성군,졸업과 동시에
사업가로 성공한 서상구군(대림펜스 사장)등이 있고 월웃회창립에 산파역을
했던 김종하군(전 유한양행부장)은 캐나다로 이민가 종종 음신으로
월우회소식을 전하고 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