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고는 말뚝에 묶여있는 그 남정네를 풀어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야 일이 어떻게 되든 당장 차마 눈으로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뒤쪽으로 돌아가 보았다. 허사였다. 풀 수가 없게 되어 있었다.
말뚝 뒤로 돌린 양팔의 손목도 쇠사슬로 묶어놓았는데,주먹만한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발목을 묶은 쇠사슬에도 마찬가지였다. 혹시 가족이나
누가 풀어줄까 싶어서 그래놓은 모양이었다. 마치 사형집행이라도 할
중범인 같은 취급이었다.

사이고는 이곳 류큐 섬들을 번청에서 심하게 수탈한다는 사실을
시마나가시가 되어 오기 전에도 들어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처럼
비인도적으로 섬사람들을 쥐어짜는 줄은 미처 짐작을 못했다.

어린 계집애가 자기네 밭의 사탕수수를 꺾어서 단물을 빨았다고 해서 그
애비를 잡아 마을사람들이 보도록 이렇게 말뚝에 묶어놓다니. 유구무언이
되어버린 사이고는 새벽 산책이고 뭐고 기분이 몹시 언짢아져서 걸음을
도로 집 쪽으로 돌려 버렸다.

손수 아침을 지으면서도,그리고 혼자 앉아서 먹으면서도 사이고는 내내 그
일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비록 시마나가시가 되어 온 몸이기는
하지만,얼마전까지만 해도 당당한 번의 중신이었는데,그런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를 보고도 가만히 있어야 되는가 하는 생각에 괴로웠다.

"게시카랑(돼먹지 않았어),게시카랑"
의분 비슷한 것이 절로 입밖으로 튀어나오곤 했다.

사이고는 그런 사람이었다. 시마즈나리아키라의 눈에 들어 중용(중용)이
되기 전 일개 "고오리가다가키야쿠"(군방서역:면서기)라는 낮은 직위에
있을때도 그는 자기 눈으로 직접 농촌의 비참한 실정을 목격하고는 곧잘
농정(농정)의 개선점을 번청에 건의하곤 했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나,관원들의 가혹한 처사를 보고는 그냥 모르는체 넘기지를 못하는
그런 성품이었다. 의협심이라 할까,불쌍한 사람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라
할까,그런것이 남달리 강한 사람이었다.

도저히 그대로 묵과할수가 없어서 사이고는 아침을 먹고나서 잠시 마루에
번듯이 누웠다가, "게시카랑!" 하고 또 한번 내뱉으며 벌떡 일어났다.

그길로 사이고는 마을에서 사십리 가량 떨어진 나세(명뢰)라는 곳에 있는
본역소(본역소),즉 파견되어 와서 섬을 다스리는 관원들의 본부를
찾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