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강남구는 번화하기로 강북의 명동 뺨칠만하다. 그래서
불명예스럽게도 오렌지족의 본거지로까지 거명되고 있다.

사치품을 취급하는 상점 고급술집 수입의류점들이 죽 늘어서 일대성황을
이루고 있다. 덩달아 소위 인술을 베푼다는 의사들도 몰려 들어 개업의가
많기로도 서울시의 구중에서도 단연 으뜸이 되었다.

유명무명한 성형외과 의사들의 간판이 압구정동 큰 거리에는 한집건너
붙어있는가 하면 다른 각과의 의사들도 수도 없이 간판을 내어걸고 있다.
그중에는 떼돈을 벌어 흥청망청하다가 불명예스럽게도 매스컴에
대문짝만하게 이름이 나붙은 사람도 있고 또 하루종일 환자들과 씨름을
해도 병원임대료나 인건비도 제대로 치르지 못해 허덕이는 이들도
적지않다.

이같이 요지경속인 강남구에 개업하고 있는 서울대출신의 의사들만도
50여명에 이른다. 두달에 한번씩 동문회가 열리고 있으나 연령차가 많이
나 심한 경우 40년이 넘는수도 있다. 그래서 60세이상의 동문들만 한달에
한번씩 따로 모이기로 했다. 이모임의 이름이 이수회이다.

"이수회"란 어떤 특정한 취미를 함께하는 흔히들 말하는 동호회가 아니다.
14,15명쯤되는 60세이상의 강남 "노털"의사들의 모임이다. 별뜻없이 매월
두번째 수요일에 모이니 이수회라 이름 붙였을 뿐이다. 그중에는 한때
이름을 날렸던 퇴역교수님도 계시고 어느 특과에서는 이름만 들어도 알아
주는 유명의사도 계시고 외국에서 다년간 선진의술을 연구실습하고 돌아온
이도 있다. 또 그럭저럭 개업의사 노릇만 하다 세월을 보낸 이도 있다.

매월 모임에는 신기하게도 빠지는 이가 거의 없다. 조촐하게
대중음식점에서 소주를 곁들여 저녁식사를 하는게 고작이다. 연중 좋은
계절에는 특별히 휴일을 골라서 야외에 나가기도 하지만 자주있는 일은
아니다.

모여 앉으면 으레 땅에 떨어진 의사의 윤리,무너진 가치관등 노인네다운
한탄들이 화제의 대상이 되곤한다. 이수회 회원들은 이기심이 남달리 거센
젊은 후배의사들에게 옛날의 마을원로같이 그들의 그릇됨을 바로잡아 줄수
있는 길이 없을까하고 열을 올려가며 토론하기도 한다. 또 때로는
마음으로 병을 고치는 심의가 으뜸이고 약이나 잔재주에 의존하는 약의나
기의는 저 아래에 속한다는 의사론도 오간다.

이런 진지한 얘기를 나누고 그 가운데 한가지라도 마음깊이 간직하고
귀가를 할라치면 더할나위없이 기분이 좋다. 세파에 시달리다 어느 하루를
택해 같은 길을 가는 사람끼리 모여서 나누는 이 진지한 대화,이것이
우리모임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