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언니"가 30일 30년간 정들었던 상공자원부를 떠났다.

이날오후 상공자원부 대회의실에서는 7명의 명예퇴직자에 대한 기념식이
있었다. 이 가운데 홍일점으로 참석한 송경자씨(52)가 직원들은 물론
역대장관들에게까지도 "송언니"라고 불리는 바로 그 사람이다.

이날 송씨에게 공로패를 전달한 김철수장관도 지난77년 수출1과장 당시
그녀와 함께 수출입통계작업으로 밤을 새우던 직속상관이었다. 김장관도
그 당시를 못잊는듯 이날 "내가 수출1과장으로 공직을 처음시작하면서 같이
고생하던 수출의 산 증인"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송씨가 상공부에 발을 디딘것은 초급대학재학중이던 지난63년3월.
9급공무원으로 상공부 상정과(현무역정책과)외환계에서
박필수전상공부장관을 담당과장으로 모시고 공직을 시작했다. 그당시
8천5백만달러였던 수출실적이 7백66억달러(지난해)가 됐으니 9백배이상
늘어난 수출현장을 지킨 산 증인인 셈이다.

"하루 하루 수출실적을 받아 계산하다가 실적이 저조할때는 가슴이 답답해
숨이 막힐듯 하지만 반대로 실적이 좋을때는 장관에 이르기까지 기뻐해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78년 수출통계가 전산화되기까지 그녀는 7명의 여직원을 데리고
수출액입금증을 토대로 주판을 튕겼다. 우리의 수출실적이 그녀의
주판알에 의지됐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모든 통계가 전산화되는 시대의
흐름에 맞춰 그녀의 역할도 점차 축소됐다.

그러면서도 그녀가 많은 동료들에게 믿음직한 선배로서 존재할수
있었던것은 오로지 그녀의 노력이었다고 현장동료들은 말한다.
인천교대에서 교사자격증(70년)과 성균관대학에서 무역사자격증(76년)을
취득할 정도의 학구열로 통계가 전산화된후에도 모든 업무를 무리없이
처리해냈던게 그것을 반증한다.

부군 한기문씨(건축업)사이에 1남2녀를 둔 송씨는 자택(경기도하남시)에서
3시간 걸리는 과천청사까지 통근하면서도 한번도 지각한적이 없었다고
동료들은 이야기한다.

<김영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