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는 요즘 책의해임에도 불구,더욱 기승을 부리는 고질병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올해가 책의 해인만큼 그동안 출판계의 암적존재가 돼왔던 부정적인
관행들을 척결하기 위해 한쪽에서는 목이 터져라 외치고있지만 구태의연한
악습들이 여전히 난무,출판질서를 크게 어지럽히고 있는 실정이다.

책의 해가 최대의 목표로 삼고있는 "국민독서수준의 획기적 향상"을
이루려면 무엇보다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출판계의 순기능이 요구된다.
그러나 출판계의 현실은 순기능을 수행하기는커녕 오히려 극단적인
이기주의에 바탕을 둔 이전투구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는 지적이다.

똑같은 내용의 책을 마구잡이로 중복출판해 독자들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또는 터무니없는 과대광고로,얄팍한 상술로 독자들을 현혹하는 사례가
갈수록 늘어나고있고 "어떤류의 책이 잘 팔린다더라"하면 벌떼같이
달려들어 순식간에 유사도서들이 수십종씩 쏟아져 나온다.

출판계의 오랜 고질병가운데 가장 심각한 유형은 중복유사출판.
최근만해도 나래미디어의"YS시리즈"와 청림출판사의 "매직아이",범우사의
"아라비안나이트"완역본등 힘들여 기획해 내놓아 팔릴만한 책들이면
어김없이 아류내지는 중복판들이 뒤따라나와 눈살을 찌푸리게하고 있다.
아울러 새입시제도 도입에따른 수학능력시험대비 청소년교양도서의 경우
중복유사출판이 더욱 기승을 부려 서로 베끼고 베낀 책들이 30여종이나
뒤섞여 수험생들이 제대로 된 책을 고르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우리나라의 중복유사출판실태가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위험수위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은 출협의 조사에서도 잘 드러난다. 출협이
자체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0개이상의 출판사가 중복출판한 책만해도
50여권에 이르고 있고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는 무려 63개사가 번역
출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밖에도 "논어" 50개사,"데미안" 41개사,"명심보감"
37개사,"좁은문"28개사,"삼국지"27개사등으로 집계됐고 아동도서인
"보물섬"이나 "소공녀"등은 헤아릴수도 없이 많이 나와있다. 최근의
저작물 중 무조건 잘팔리는 작가로 정평이 나있는 시드니 셀던의 작품은
약15종의 책을 여러출판사들이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중복출판을 주로 하는 출판사들은 특히 영화개봉에 맞추어 원작소설을
재빠르게 번역,서점가에 내놓아 짭짤한 재미를 보는 경우가 많다.

해당 영화가 인기를 끌면 원작도 같이 잘팔리는 현상때문에 단시일내에
급조하거나 심지어는 "드라큐라"와같이 제목만같고 내용은 관계도 없는
책을 내는 경우,더 심하면 시나리오만 보고 적당히 짜깁기해
번역판인것처럼 소개하는 사례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러한 사례로는 지난해 개봉해서 화제가 됐던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으로 10여종이 일시에 출간됐고 "시티 오브 조이"가
5종,"제3공화국"이 4종등이었다.

중복유사출판은 양식있는 출판사들에 경제적 손해를 끼치는 것은 물론이고
독자들에게도 결정적인 피해를 입힌다는 점에서 하루빨리 근절돼야 한다.
중복유사출판물들은 대부분 시간에 쫓겨 졸속 번역된 것이거나
저질출판물들이어서 직접적으로 입는 피해가 심각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일부출판물의 경우 서점측에 변칙적으로 높은 마진율을
제시,일부서점에서는 오히려 정상출판물보다 이를 선호하는 사례마저 있어
유통질서까지 혼란시키는 결과를 낳고있다.

이처럼 건전한 출판문화의 발전을 저해하고 출판자원의 낭비적 요소로
지적되고 있는 중복유사출판이 좀처럼 근절되지않는 이유는 전적으로
정당한 노력의 대가를 바라기보다는 "한탕주의"를 노리는 일부 비양심적인
출판인들의 비뚤어진 양식때문.

유사출판도 양식에 호소하는 수밖에 없지만 중복출판의 경우 특히
우리나라가 국제저작권협약(UCC)에 가입한 시점인 지난 87년 이전의 책들은
중복출판을 해도 제재할 방법이 없어 전적으로 출판인들의 양식에 맡기는
수밖에 없기때문이다.

중복유사출판과 함께 출판계의 가장 심각한 고질병으로 떠오르고 있는 또
한가지 문제는 최근 불황타개책으로 각 출판사들이 과열경쟁을 벌이고 있는
과대광고.

엄청난 광고물량공세를 통한 억지베스트셀러만들기도 결국은 독자를
기만하는것이며 출판사에도 적지않은 타격을 입히는 요인이 되기때문에
더이상 방치할수 없는 부분이다. 최근 1~2년사이에 크게 늘어난
서적광고는 물량면에서 지난 92년기준 (TV 라디오 신문
잡지)1천1백15억4천5백만원에달해 전체광고시장의 5.2%를 차지할 정도로
신장됐다. 이에따라 권당 광고비도 4백60원에서 6백30원으로 뛰어
경영수지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좋은책을 출판해 독자들의 현명한 판단을 바라기보다는 억지주입식광고에
의존,한몫보려는 경향때문에 독자들이 피해를 입는데다가 비슷한 종류의
책들을 내는 출판사들도 위기의식을 느껴 출혈을 감수하며 광고를 해야하는
악순환을 거듭하게 되므로 이 역시 자율규제가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시점이다.

출판계에서는 "책의해를 맞아 국민독서수준향상과 기반시설확충등
핵심사업들도 중요하지만 올바른 출판풍토조성을 위한 출판인들 스스로의
자정노력이 핵심이 되어야한다"는 입장을 보이면서 "중복유사출판사례는
어디까지나 양식상의 문제인만큼 지켜지지 않을 경우 명단공개는 물론
서점과의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통한 근절대책을 세워야하며 또 무차별
광고경쟁에는 자율기구의 설립등을 통해 통제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백창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