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오후,학동들이 모두 돌아가고 난 다음 사이고는 혼자서 마을
뒤에 있는 야산의 언덕빼기로 올라갔다. 알맞게 그늘을 드리우며 몇 그루
나무가 서있고,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이었다.

그 바위 위에 올라가 앉으면 바다가 온통 눈앞에 후련하게 펼쳐진다.
사이고는 무료할 때나 울적할 때면 곧잘 그곳을 찾아가서 수평선 너머의
아득한 고향 쪽 하늘을 바라보며 시름을 달래는 터였다.

여느 날과 달리 바위 위에 올라가 앉아 고향 쪽 하늘을 바라보는 사이고의
가슴은 부풀어 있었다. 지금까지는 그 하늘이 아득하게만 느껴졌는데,이제
그게 아니었다. 곧 손에 잡힐 듯이 그쪽 하늘이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수평선을 넘어 자기를 데리러 오는 배가 멀지않아 나타날
것만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이나오스케가 죽었으니,세상이 자기를 이대로 가만히 내버려두지는
않을게 아닌가. 아-하고 사이고는 냅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그러나
눌러 참았다. 그대신 그는 활개를 펴며 커다랗게 숨을 들이쉬었다가 훅-
내뿜었다.

그런 기대감과 흥분은 사이고의 근황의 지사로서의 열정과 가슴 속 깊숙이
담겨있는 정치적 욕망에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아이가나라는 한 여자의 지아비로서의 고뇌도 없지가 않았다.

"여기 당신의 아이가 들어있단 말이에요. 아시겠어요?""만약 당신이
사쓰마로 돌아가게 되면 어떻게 하느냐 그말이에요"하고 간밤에 아이가나가
슬픔에 젖은 목소리로 하던 말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시마나가시에서
풀려나 돌아가게 되면 그녀와 아이를 버려야 되는게 아닌가.

정치적 성향의 대장부인 사이고에게 있어서 그런 것은 사소한 일에
불과했지만,그러나 한 인간으로서 괴롭지 않을 수가 없었다.

기대감과 흥분,그리고 고뇌에 이어서 이곳 아마미오시마에 와서의 일들이
회상되기도 했다. 이제 정확히 일년 삼개월이 다되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무척 기나긴 세월이었던 것처럼 생각되었다. 섬에서의 생활은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으나,세상과 격리되어 사방 바다에 갇혀 사는
실의의 세월이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이고는 해가 서쪽 수평선 위로 뉘엿뉘엿 기울어질 무렵까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면서 바위 위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수평선 위에
펼쳐지는 저녁노을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일년 삼개월 전 사이고가 이섬에 도착했을 때도 서녘 수평선 위의 하늘은
곱게 물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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