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 사이고다카모리가 기쿠치겐고라는 이름으로 아마미오시마로
시마나가시가 되어 가서 그섬의 다쓰고(용향)라는 마을에서 유배생활을 한
지도 어느덧 이년째로 접어들어 있었다.

삼월도 다 가는 어느 날 해질 무렵이었다.

학동(학동)들이 모두 돌아가고난 뒤,사이고는 마루에 혼자 누워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그의 집은 "데라고야"(사자옥:서당)처럼 되어
있었고,그는 훈장 노릇을 하고 있었다.

"여보,사쓰마에서 편지와 물건이 왔어요"
여자의 밝은 목소리가 대문 쪽에서 들려왔다.

아이가나(애가나)였다. 사이고가 아미모오시마에 와서 얻은 아내였다.
그러니까 두번째 처였다.

사이고는 부스스 일어나 앉았다. 아이가나는 물건 꾸러미를 마루 한쪽에
내려놓고,편지만 남편에게 건넸다.

사쓰마의 동지들로부터 종종 서한이 오고,또 위문품을 보내오는 것이었다.

편지를 받아 펼쳐서 읽어내려가던 사이고는 별안간 그만, "야-해냈구나!
해냈어!" 하고 냅다 소리를 질렀다.

아이가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얼굴과 목줄기까지 온통 벌겋게 상기된 사이고는 벌떡 일어서더니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도코노마에 안치해 놓은 대검을 집어들기가 무섭게 도로
마루로 나와 맨발로 훌떡 마당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칼을 쑥
뽑아들고는 마당 한쪽에 심어져 있는 소나무를 향해 달려갔다.

"에잇! 에잇! 칙쇼!(개새깨) 곤칙쇼!(이개새끼)"
버럭버럭 고함을 내지르며 소나무 가지를 냅다 내리치는 것이었다. 싸박
싸박 가지가 잘려나갔다. 마치 살짝 실성한 사람 같았다.

아이가나는 놀라 입이 딱 벌어졌다.

두려움에 온몸이 으스스 떨리기까지 했다. 남편이 칼을 빼든 모습을 처음
보았을 뿐 아니라,마치 발작을 일으킨 사람처럼 애꿎은 소나무 가지를 마구
잘라대니 말이다.

"앗핫핫하. 엇헛헛허."
대검을 멈추더니 이번에는 껄껄 웃어대는 것이 아닌가.

"아니,여보"
아이가나는 정말 남편이 어떻게 된게 아닌가 싶어서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러자 사이고는, "아-이제 좀 살겠구나. 여보,어서 술상을 차리라구"
하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