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74년에 미국 하와이에서 아시아.태평양 연안 지역 중소기업회의가
열렸다. 한국에서는 김봉재회장과 백영훈박사 등이 참석하였다. 이
회의에서 범세계적인 회의로 발전시키자는 결의안이 채택되어
중소기업국제회의(ISBC)가 결성되었고 매년 장소를 옮겨 대회를 열게
되었다. 나는 1980년 중앙회 회장으로 취임한후부터 대회 운영위원(지금은
종신 명예 운영위원)으로서 한국대표단을 이끌고 이 회의에 참가했다.
그리고 세계 여러나라를 순방하면서 국제적인 중소기업인들과 교류를
하게되었다.

나는 ISBC대회의 의장과 분과위원회의 연사도 여러 번 맡았다.

숭실대의 어윤배박사가 통역으로 수고해 주었다. 환영파티나 만찬회 같은
데에서 세계의 중소기업인들과 두터운 교분을 쌓는 일도 중요한 일이어서
나는 사적으로도 많은 인사를 초대하여 파티를 벌이고 서로 담소하면서
경험을 함께 나누었다. 농담을 주고 받으며 때로는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었다.

미국의 자영기업연합회의 존슨 회장도 국제회의를 통해 알게 되어
가족적인 친교까지 맺게된 사람이다. 그는 ISBC창설의 주역
멤버로서,오늘의 융성을 가져온 중소기업 지도자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인물이었다. 하루는 초대를 받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자영기업연합회 본부를 방문했다. 그는 우리 일행을 맞아 자기 배지를
떼어 내 가슴에 달아주면서 "당신은 오늘부터 미국 연합회의 회장이오. 자
이 자리에 앉으시오"하고는 자기 자리를 내어주었다. 회장 의자에 앉은
나는 앞에 있는 사무국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는 내가 회장이오.
내가 잠시 한국에 출장을 갔다오겠는데 그동안 당신이 열심히 일하면
봉급을 10%올려줄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10%감봉할 것이오"했더니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점심은 시내에 있는 골프장의 클럽식당에서 먹었다. 창 너머로 골프치는
사람이 오가는 것이 보였다. "존슨 회장님은 골프 잘 치시겠지요"하고
물었더니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면서
일행중의 한사람이 사무국장에게 핸디가 얼마나 되는냐고 물었다.
사무국장은 "사실 존슨 회장님이나 저는 골프를 못 칩니다. 중소기업자가
언제 골프를 배우고 칠 시간이 있습니까"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순간 한대
얻어맞은 것 같았다. 지난 90년 그는 별세했다.

중소기업이 잘되고 있는 나라로서는 대만을 꼽을수 있다.
류금정대만중소기업연합회 회장하고는 같은 IBSC 운영위원으로서 친교를
맺고 있는데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바가 있다.

류회장은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하기도 했다.

"지난 49년 공산군과의 싸움에 패한 장개석 총통은 대만으로 쫓겨왔다.
장총통은 대만의 민심이 등을 돌리게 되면 그 이상 갈 데도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이렇게 지시를 내렸다. "본토에서 온 사람들은 먹고는 살지언정
돈 벌 생각을 말아라. 돈은 대만사람들에게 벌게 하라. 그리고 재벌을
키우기 위한 행정적.금융적.세제적 지원은 절대하지 말아라"그리고 쓰라린
경험을 거울 삼아 부정 부패를 철저히 척격해 나갔다. 한 예로 며느리가
부정에 연루된 것을 안 장총통은 권총을 꺼내주며 자결을 하라고 했다.
며느리는 결국 물에 빠져 죽었다. 장경국 총통도 아들이 부도를 내게 되자
유지들이 그 부도를 막아주었지만,자신이 총통으로 있는 동안은 대만에
있게 할수 없다며 아들을 추방해버렸다"
후진국이 경제성장을 시작할 단계에서는 수입권을 따내는 것이 큰 이권이
된다. 60년대부터 한국에서는 1백만달러 이상 수출한 업체에 대해서만
수입 허가를 내주었다. 대만은 20만달러만 수출하면 수입권을 주었다.
그래서 1980년 인구 2천만인 대만에는 무역등록업자가 6만이나 되었다.
그런데 한국은 인구 4천만에 무역업자가 겨우 2천2백명 이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오늘날에 와서 대만의 중소기업을 크게 진흥시키는 기반이 되었다.
그 결과 중소기업이 발달하여 튼튼하고 광범위한 중산층이 생긴 것이다.
보호 육성책도 좋지만 자력으로 자생할수 있고 스스로 발전할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말해주는 본보기라 할수
있다.

내가 독일에 갔을때 콜 총리는 과거의 동독지역에 대하여 간접적인 사회적
여건 조성으로 자립할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줄지언정 직접 지원은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국민 모두가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는
부민사회를 실현하자면 각자가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고 발전하는 의식을
갖는 것이 선행조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