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3일 오후 예술의전당오페라극장내 자유소극장에서는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서울플럭서스페스티벌에 참석하기 위해 내한한
외국작가들이 자유분방한 차림으로 기차놀이를 하며 등장,객석에 앉은
사람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는가 하면 비누방울을 만들어 날렸다.

한쪽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자신과는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작은 패널에 무엇인가를 써서 들었다 놨다 하고 또다른
참가자는 손으로 이것저것 만들었다.

플럭서스는 60년대에 유럽에서 태동된 전위적인 예술운동. 지금도
계속되고는 있으나 이미 그 참신성이나 실험성은 상실한지 오래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의전당 전관개관기념축제의 일환으로 이들 서구의
플럭서스작가를 대거 초청,서울플럭서스페스티벌을 꾸민데 대해 미술계는
물론 공연예술계의 많은 사람들은 "알 수 없는 일"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나름대로 흥미있는 행사가 될 수 있고 따라서 국내에 한번쯤 소개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을 꼭 많은 돈을 들여 예술의전당 전관개관기념축제의
주요행사로 기획했어야 했느냐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미술관계자 A씨는 "최근 들어 규모가 크거나 국가적인 차원의 행사는 으레
국내작가가 아닌 외국작가들의 잔치로 치러지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실제로 한국의 과학과 문화를 전세계에 알린다는 취지아래 개최되는
대전엑스포에서조차 주요이벤트와 전시의 핵심이 외국인에 의해 독차지되어
있다시피 한 형국이다. 대전엑스포의 주제와 의의를 상징하는 동시에
전체행사장의 주요안마당 구실을 할 미래테마파크의 예술총감독은
프랑스인인 퐁튀스 훌텐. 테마파크에 전시될 작품의 출품작가도 대부분
외국작가들이다.

퐁튀스 훌텐의 경우 미래테마파크에 관한 구상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정원의 나무를 대나무로 하겠다고 대답,한국과 일본 정원의 차이를
모르는채 구미에 널리 소개된 일본정원을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혹을 샀다.

영구설치물이자 예술적 조형물로 남게돼 관심을 모으는 재생조형관의
주요전시인 현대미술리사이클링전 또한 외국작가 작품중심으로 꾸며진다.
27명의 작가중 한국작가는 8명뿐이다.

물론 지구촌시대이고 엑스포 자체가 세계적인 행사인 만큼 전시회도
국제적으로 꾸며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얘기도 있다. 그러나 많은
예술인들은 첨단과학과 전통의 조화라는 엑스포문화행사의
캐치프레이즈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전통문화나 전통미술을 보여줄 수 있는
전시는 찾기 어려운 가운데 외국인들의 잔치판은 필요이상 크다고
지적한다.

작가 B씨는 "외국작가 전시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것 우리작가
작품은 무시한 채 외국작품이 좋고 앞서 있으니 국내작가와 미술팬에게
되도록 많이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는다.

신사대주의 내지 문화사대주의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는 것이다.

미술계의 이같은 신사대주의는 영어나 프랑스어 심지어 일본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유학이나 기타 연유로 외국생활을 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우리것은 제대로
알지도 못한채 무조건 외국것만 좋고 훌륭하다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외국작가나 작품을 소개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부류 또한 증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런가하면 한국미술을 세계에 소개하겠다 혹은 세계속의 한국작가가
되겠다라는 과잉의욕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한국미술을 세계에 소개하려면 국제화단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사들과
교분을 가져야 한다든지 그들에게 한국과 한국작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믿는 것이 결과적으로 그들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는
신사대주의를 낳고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미술인들의 잔치인 휘트니비엔날레를 국내에 유치,엑스포기간중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도 같은 발상의 결과이자
미술계의 신사대주의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현재 미국뉴욕의 휘트니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6월20일까지)93휘트니비엔날레는 일반인의 상상을 불허하는 전위적
작품으로 가득차 미국내에서조차 "지나치게 정치적이다"라는 평을 받고
있다.

이 전시회를 국내에 유치하기 위해 드는 비용은 미화 70여만달러(한화
5억6천여만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재미작가 K씨는 이 전시를 왜
국내에서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잘라말한다. 그러나 국립현대미술관장
임영방씨는 "일본에서 3백만달러를 들여 유치하려 했던 것을 백남준씨가
나서서 70여만달러에 한국에 들여오게 된 것"이라며 "국립현대미술관과
한국미술계를 소개하는데 이보다 더 큰 이슈는 없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휘트니비엔날레출품작을 해외에서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플럭서스페스티벌을 할 때도 운영관계자들은 일본에서도 하지 않은 것을
국내에서 한다며 생색을 냈다.

하지만 이같은 풍토를 바라보는 이들중 상당수는 "일본에서 하지 않은
것을 한국에서 한다는 사실만도 자랑이라고 여기는 것까지가
문화사대주의내지 신사대주의적인 발상"이라고 통탄한다. 구미뿐만 아니라
일본을 향해서조차 사대적인 사고에 젖어있는 것을 입증하는 사태라는
지적이다.

이들은 "외국것을 공부하는 것은 취할 것과 버릴 것을 제대로 구분하기
위한 것인데 우리것을 배우지 않은 채 외국것만 어설프게 배우고 있는 것이
이같은 우리문화 말살 풍토를 낳고 있다"며 지금부터라도 우리문화에 대한
진정한 연구가 이뤄지는 것만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신사대주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박성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