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대부분 초중고등학교를 고향에서 마치고 대학을
서울로 올라온다. 이들은 대개 넉넉치못한 집안살림과 문화적인 이질감
하국 또는 자취생활에서오는 외로움등을 달래기위해 때론 몇조각의
깍두기에 막걸리잔을 기울이 곤하던 학창시절을 보냈을 것이다.
재학시절의 이런 인연들이 자연수레 사회생활에도 이어진다. 오늘의
거제사랑청년회도 그런 모임이다. 르러니 만큼 참석쥴에 대한 부담도
전혀없어 1년이든 2년이든 시산이 날때 들르면 언제나 고향처럼
맞아주는곳이다. 월별 또눈 분기별회비니 하는식의 경제적인 부담도
물론없다. 보였을때 나온 경비는 즉석에서 자연스레 해결된다. 서로를
부르는 호징에서도 그저 나이가 많으면 형님이고 적으면 동생이다.

한번모이면 대개 자리를 옮겨가면서 까지 술자리가 마련되지만 자정이
가까워 끝날때는 고향거제의노래를 부르고 헤어진다.

이렇듯 형님에대한 존경과 아우에대한 사랑으로 20대후반에서 부터
40대초반까지 50명으로 뭉쳐있다. 분기마다 모이고 봄나들이와 연말모임은
가족동반으로 한다.

나이가 제일많다는 이유로 나에게 회장자리를 맡겼지만 항시 부족함과
한계를 느낀다. 아직은 모두가 사회에 뿌리를 내리기위해 이리뛰고
저리뛰는때라 서로 큰힘이 되어줄수가없다. 그런속에서도 묵묵히 자기의
길을 흐트러짐없이 걸어가는 아우들을 볼때면 그렇게 자랑스러울수가 없다.

학교다닐때 겨울에도 양말을 벗은채 고무신만을 신고다녀 친구들이
지독히도 가난한집아들인줄 알았던(실제로는 그것이 시골생활의
습관이었음)진성진은 서울 법대졸업후 수원지검과 충무지청을 거쳐 현재
서울지검의 검사로있다. 동향출신 여자를 만나 음색에서만은 딜렘마가
없다는 겸부경은 국회의원보좌관으로 열심이고,대학시절에 학교내의
거제출신 아이들을 찾는다고 종이에 쓴 간판을 목에걸고 며칠동안이나
캠퍼스를 누볐던 이상현은 고대졸업후 국회의원비서를 거쳐 지금은
전노협에 몸담고 있다. 상업학교를 졸업해 일찍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던
신종윤은 남자가 이렇게 살수만은 없다고 뛰쳐나와 늦은공부로 연대에
진학하여 사법고시에 합격하고 안기부에 근무중이다. 항시 높은 이상을
쫓아살면서도 결코 현실에 소홀하지않는 우하영은 연대졸업후
코오롱기조실에 근무중이며 부산동의대 교수로있는 윤석봉은 서울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열성파지만 아직도 총각이다. 고대의대에 진학했으나
의사가 싫다고 예과2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