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신들이 등청을 할때 기회를 봐서 그 행렬의 앞으로 나아가
청원서를 제출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었다. 주로 지방에서 올라온 하급
사무라이들이었고,에도에 사는 일반 백성일 경우도 있었다. 개인적인
억울한 사연을 직접 막부의 중신에게 호소하여 해결해 보려는 것이
대부분이었고,더러는 국사에 관한 의견을 제출하기도 하였다.

"뭐야? 비키지 못할까!"
도모가시라가 버럭 고함을 질렀다.

그러나 세 사무라이는 그자리에 꿇어 앉은 채 움직이질 않았다. 세
사람중 가운데 앉은 사무라이가, "이것을 받아주십시오" 하면서 품안에서
청원서를 꺼냈다.

자연히 행렬은 주춤거리게 되고,도모가시라는, "이놈들아,뭔데 대감어른의
행렬을 가로막고 야단이야"
이마에 굵은 여덟팔자 주름을 접으며 뚜벅뚜벅 세 사무라이 앞으로
다가갔다.

도모가시라가 다가오자,청원서를 꺼내든 사무라이가 일어섰다.

"대감어른께 올리는 청원섭니다. 받아주십시오"
도모가시라는 눈을 부릅뜨고 못마땅한 듯이 노려보더니, "무슨 청원이야?"
하고 내뱉으며 홱 나꾸어채듯 오른손으로 그것을 받아쥐었다.

그 순간이었다. 사무라이는 쓰고 있던 삿갓을 얼른
벗어던지고,"하오리"(익직:옷 위에 입는 짧은 겉옷)도 훌렁 벗어붙였다.
이마에는 흰 머리띠를 질끈 동이고 있었다. 서두기습조의 조장인
모리(삼)였다.

"에잇! "
모리는 칼을 빼들기가 무섭게 냅다 도모가시라를 향해 사정없이 휘둘렀다.

"으악- "
비명소리와 함께 시뻘건 피가 튀면서 도모가시라의 몸뚱이는 휘청 꺾여
옆으로 풀썩 쓰러졌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이미 다른 두 사무라이도 벌떡 일어나 삿갓과
하오리를 벗어던지고,대검을 빼들고서 냅다 기합을 지르며 내닫고 있었다.
행렬의 선두를 기습하기 위해서였다.

그때였다. 쾅! 콰쾅! 요란한 총성이 울렸다. 육혈포 소리였다.

광장 가의 어떤 건물 모퉁이에 대기하고 있던 세키데쓰노스케가 행렬을
향해 뛰어나오며 이이나오스케의 가교를 향해서 육혈포를 쏜 것이었다.
물론 지난 정초에 도쿠가와나리아키로부터 선물로 받은 그 육혈포였다.

그 육혈포로 이이나오스케를 저격한 것이지만,동시에 그소리는 전원 행동
개시의 신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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