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년의 일이었다. 하루는 김만제재무부장관이 만나자기에 가보았다.
장관은 D사를 인수할 의향이 없느냐고 물었다. D사는 출판.인쇄시설로는
국내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회사이다.

"D사가 빚이 많아 정리를 하려고 하는데 딱 잘라서 편의를 봐드릴테니
인수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면서 유리한 조건이니 즉답을 하라는
것이었다. 아닌 밤중에 느닷없이 그런 제의를 한다고 즉답할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나는 아무리 급한 일이라도 24시간 생각할 여유는
주어야겠다고 하고 나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음식도 잘못 먹으면
체하는 법이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로는 D사의 빚이 1천수백억원이라
하던데 그 내용도 잘 모르거니와 아무리 좋은 조건이라 하더라도 그 빚은
결국 다 갚아야 한다. 원이금을 상환하자면 연간 매상이 부채금액보다
많아야 할텐데 그러자면 영세한 인쇄업자들의 일감까지 모조리 쓸어와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은 공인으로서 도저히 할짓이 못된다는 판단이 섰다.

또 기업이란 땀과 정성과 머리로 가꾸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그런데 남이 몇십년 키워 놓은 기업을 거저 먹다시피 하면서 인수한다는
것은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할때 손수 가꾼
기업을 하루아침에 빼앗기는 그 마음은 얼마나 아프고 쓰라리겠는가.

게다가 기협중앙회 회장이라는 사람이 이권운동이나 하고 다니는 것처럼
비칠 것 아닌가. 자존심으로나 명예를 위해서도 그런 짓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 이튿날 장관을 다시 만났다.

"나는 인수할 수 없습니다. 그런 유리한 조건이라면 지금까지 하던
사람에게 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 조건이라면 충분히 살아날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거절했다.

언젠가 청와대 만찬때였다. 그 자리에는 경제단체장들과 정주영 이병철씨
등을 비롯한 재계 거물이 모두 참석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모 재벌
인사가 중소기업자들이 평일에 골프만 치면서 부품을 제대로 못만드니 큰
문제라면서 앞으로는 부품까지도 대기업이 만들어야겠다고 했다. 그말을
들은 나는 중앙회 회장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혹시 일부 그런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말을 하고
중소기업이 고용이나 부가가치 수출면에서 대기업 못지 않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역설했다. 그 인사가 다시 반박해 왔으나 대통령 앞에서 마치
언쟁이라도 하는 것 같아서 그이상은 입을 다물어 버렸다.

대일차관문제가 한창 거론되던 때였다. 이천전기의 장병찬회장이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도대체 경제단체장이라는 사람들은 뭣하는 겁니까.
대일차관을 현금으로 받아야지 현물로 받는다니 그러면 한국의 기계
공업계는 망합니다. 부품까지 일본에서 들여오게될 판이니 중소기업은 또
뭘 먹고 삽니까. 이런것 하나도 제대로 건의를 못하다니,원참"
그후 수출품 전시회 테이프를 커팅하고 점심으로 곰탕을 먹는
자리에서였다. 그날은 마침 이웅평이 미그19기를 몰고와 귀순한 날이어서
대통령의 기분이 매우 좋아보였다. 그래서 대일차관을 현금으로 받는것이
좋겠다는 뜻을 건의했다. 그랬더니 대통령은 대뜸 언짢은 기색으로 "이
답답한 유회장,이사람아. 누가 그걸 몰라. 할수없으니까 그렇지"라고
말했다. 나오면서 금진호상공차관과 마주치자 "상공부를 대변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그가 위로해 주었다.

전에 전북의 어느 군청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거기서 뜻밖에도 반갑게
맞이해주는 공업학교 동창 하나를 만났다.

"나는 자식놈은 공고에 안보내겠네. 지금 군수로 와있는 사람이 우리
동기생 아무개의 아들인데 나는 이게 뭔가. 아직 계장도 못되고 주임으로
썩고 있으니"그가 내뱉은 말이었다.

그후 청와대에서 기술진흥 확대회의가 열렸을때 이 이야기를 소개했다.
큰 감명을 받았는지 대통령이 "앞으로는 기술자가 우대를 받는 사회를
만듭시다. 기술자라면 서로 사위 삼겠다고 나서는 사회를 말입니다"라고
하는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