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초 새중소기업회관에 장치할 미술품마련을위해 친교가 있는 이항성
화백을 찾아간 일이있다. 이화백은 서양화가 전공이지만 판화로도 유명한
작가이며 파리를 중심으로 20여년동안 활동하고 있는 국제적인 인물이다.

"현관 로비는 1백30평이나 되는 공간에 높이가 8m이고 그 정면벽은 가로
세로 8m씩이나 됩니다. 여기에 중소기업의 3대이념인 협동화 현대화
국제화와 지구촌에서 우주로 뻗어나가는 우리의 기상을 상징하는 미술품을
장치하고 싶습니다"라고 이화백에게 내구상을 이야기했다.

"바탕을 짙은 보라빛으로 깔고 태양의 흰빛을 중심에 두고 쪽배에
세사람이 타고가는 그림을 배치하면 어떻습니까. 세 사람은 3대이념을
상징하고 그들을 태운 쪽배가 우주를 향해 나아가는 것입니다"이화백은
이렇게 그의 구상을 밝혔다.

나는 그의 구상에 동의했다.

"그런데 실은 돈이 없습니다. 많이 드렸으면 좋겠는데 예산이
5천만원밖에 없습니다. 그 대신 당신 이름 석자를 크게 새겨 놓으시오.
몇 백년도 더갈 우리회관 로비에 당신의 이름이 영원히 남을겁니다"
이말을 듣고 이화백은 어이가 없는지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만약 호당
얼마라고 따진다면 1천3백호는 될터이니 수십억도 넘을 것이었다.

"좋습니다. 나를 알아주시니 힘껏 해보지요. 언젠가는 내그림이 건물
값보다 더 나갈 때가 오겠지요"이화백의 승낙이 떨어졌다.

그후 이화백은 이천 도자기 굽는데로 내려갔다. 반죽으로 가로 세로 20
정도의 조각 8백10개를 만들어 말린 다음 거기에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여 채색을 하고 구웠다. 조심스러웠던 것은 이러한 여러과정중에서
한장도 깨지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깨지면 다시 만들어도 색이
맞지않게된다. 이 세라믹 조각을 벽에 붙이는 일도 큰일이었다. 밑바닥에
담요를 두텁게 깔고 일을 시작했는데 천만 다행히도 단 한장도 깨지않고
완성을 시켜놓았다. 이것이 "협동의 빛"이라는 도자 벽화이다.

뒤쪽 현관의 벽에 대해서는 출판협동조합 이사장 허창성씨가 좋은 안을
내놓았다.

"유회장이 소장하고 있는 김흥수화백의 "군동"은 참으로 좋은 그림이오.
그것을 쓰면 어떻겠소"했다. 그것은 아이들이 흙장난을 하고있는
그림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6.25후에 초토가 된 국토를 재건하려면
모든 국민이 동심으로 돌아가 나라를 건설해야 한다는 이미지를
담고있다한다. 이것을 모자이크 식으로 재현하면 훌륭한 작품이
될것이라고 여겨졌다.

김화백이 화판에 확대한 밑그림을 그리고,4백여색으로 물들인 유리조각을
붙여나갔다. 이런 방식은 한국에서는 최초의 시도였다. 완성해 놓고 보니
참으로 기가막힌 작품이 되었다. 이것도 1천호 이상의 대작이며 제대로
따진다면 수십억원의 값이 나갈 것이다. 그런데도 나하고 교분이 두터웠던
관계로 재료비5천만원만 받고 그 힘든 일을 해주었다.

한편 회관앞에는 서울대 엄태정교수에게 의뢰하여 중소기업 발전을
상징하는 청동상을 세웠다. 이러한 노작에도 역시 재료비 5천만원 밖에
못드렸으니 미안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작품은 회관 건물과 함께
영원히 남을 것이다.

중앙회설립 25주년이 되는 1987년3월3일 감격적인 준공식을 가졌다.
정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한 힘든 일이었다. 내 일같았으면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공적인 일이 이렇게 무섭구나 하는 것을 다시한번 느꼈다. 그
어려운 역사에 내일처럼 헌신해 준 모든분들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이룩하지
못했을 일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관리이사가 손님 한분을 안내해 들어왔다. 감사원에서
건축감사차 나왔다면서 "대충 둘러 보았습니다만 어림잡아서 35억원은 싸게
지으셨더군요"라고 했다. 그후 며칠이 지나서 이번에는 감사원장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유회장,당신 왜 정부돈 가지고 회관을 지었소"하기에
우"우리는 정부보조기관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정부보조금은 경상비나
하는 것이지 누가 건물까지 지으라고 했소"하는 것이었다. 말이 궁한
나머지 나는 엉겁결에 "아,대통령의 재가를 얻었습니다"해 버렸다.

중소기업회관은 발전하는 이나라 중소기업을 상징하듯 여의도에 우뚝 서
있다. 지금 이런 건물을 짓자면 1천3백억원은 들 것이다.

회관을 바라보면 물불 가리지 않고 덤볐던 그 시절이 회상되어
감개무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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