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리처럼 일만 하겠습니다"
(주)한양의 법정관리신청으로 1조원에 가까운 원리금회수가 상당기간
어렵게돼 "창립 94년만에 최대의 경영위기"를 맞은 상업은행의 정지태행장.

은행장자격으로 각종회의에 나가는것을 삼가고 일만하는 대리처럼
지내겠다는 그의 각오는 비장하지만 그가 헤쳐나가야할 현실은 그리
녹녹지않다.

상은은 가뜩이나 금융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 이미 작년말
서울명동지점금융사고로 8백억원가량의 손실(예상)을 안고있는데 이어 이번
한양건에 부닥쳐 "삼중고"에 시달리는 꼴이됐다. 지난82년 혜화동
김동겸대리의 수기통장사건(명성사건)때 보다 훨씬 더한 위기감이
은행안팎에 감돌고 있다.

한양의 법정관리신청으로 예상되는 수지악화는 어림잡아 연간 5백50억원.
한양의 제2금융권빚 4천3백억원의 대지급에 따른 이자손실,일반대출
1천2백억원의 이자동결등을 연10%로 따진것이다. 이미 올해5개월이 지났고
주공인수후 사정이 좋아지면 손실액이 예상보다 적어질수는 있으나
한양인수에 따른 자금지원등을 고려하면 올해 자칫하면 적자를 낼 가능성을
배제할수 없는 상황이다.

상은은 이에따라 종합기획부와 자금부를 중심으로 수지보전을 위한
자구노력과 자금마련등 "위기탈출대책"마련에 안간힘을 쏟고있다.
정행장은 "모두가 주인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어려움을 극복할수
있다"며 "뼈를 깎는 아픔을 참아가면서 자구노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상업은행이 어떤식으로 자구에 나설지는 아직 불확실하나 가능한 방법은
다 동원될 것으로 보인다. 인원증가및 임금인상억제 점포통폐합 배당중지
증자등을 상정할수 있다. 정행장은 "필요하다면 계열사매각도
검토할수있다"며 자구노력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이같은 자구의 몸부림은 은행전직원들에게 적지않은 고통을 줄게 뻔하다.
이미 임원들은 작년말에 터진 명동사고의 수습차원에서 올해 보너스를
반납했다. 당초 월급도 받지않다가 부점장들이 봄철보너스를 반납하면서
월급은 "받으라"고 건의,3월부터 다시 받기 시작했으나 한양사태를
극복하기위한 자구노력이 현실화되면 또 다른 차원의 희생이 불가피하다.

82~83년 이철희.장영자어음사기사건과 영동개발진흥사건(지급보증사기)이
연달아 터져 존폐의 위기에 몰렸던 조흥은행도 피나는 노력이 뒷받침됐기에
오늘에 이르렀다. 당시 이 은행은 상임이사 2명을 줄인것은 물론
직원신규채용을 중지하고 승급및 승진을 1년간 보류했다. 파리 휴스턴
토론토등 3개 해외사무소를 폐쇄하고 여자농구부등 운동부를 해체하기도
했다.

미국의 씨티은행도 지난90년말 부동산경기침체로 도산위기를 맞아
감독당국의 지도로 배당금지급중지 증자 자산매각 인원감축등을
추진,가까스로 정상화의 길로 들어섰다.

은행감독원은 상업은행의 수지상황을 크게 우려,자구노력을 강력히 촉구할
방침이다. 은감원관계자는 "상업은행이 피부로 느끼는 위기감보다
감독당국의 우려가 더 크다"며 "작년말 명동지점사고때도 배당을 중지토록
지도했음에도 불구,주주들을 의식해 2%를 배당했지만 앞으로 강력한
자구노력을 유도하겠다"고 강조했다.

물론 은행볼륨이 커져 예전에 비해 손실을 만회하기가 다소 쉬워졌다고
할수는 있다. 상업은행직원 1만명이 1인당 5백만원씩만 더 벌면 5백억원을
충당할수있고 배당(2%)을 하지않게되면 1백30억원(자본금6천5백억원)을
절약할수있다. 그러나 이는 은행의 바람일뿐일수있다. 최근의 경영여건이
워낙 나빠져 위기극복이 기대처럼 될지는 극히 의문시된다.

정행장이 대리처럼 일만하고 직원들이 똘똘뭉쳐 과연 설립이래 최대위기를
극복해낼수있을지 금융계가 비상한 관심으로 지켜보고있다.

<고광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