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전에 미국시카고의 상품거래소에서는 "오염면허"라는 매우 이례적인
상품의 거래가 이루어졌다. 오는95년부터 발효하게 되는 이 면허의
소지자는 1장에 1 의 아황산가스를 배출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는데
석탄을 많이 사용하는 전력회사가 주요 고객이 되고 있다.

첫날에는 팔려고 내놓은 27만5,000장중 15만장만이 거래되어 기대를 약간
밑돌았지만 멀지않아 활발한 거래가 일어나리라고 예상하고 있다.

우리가 보통 "상품"이라고 하면 쌀이나 옷,혹은 자동차 같은 것들을
연상하게 된다. 그런데 이 오염면허는 민간부문의 어떤 생산자에 의해
생산된 것이 아니라 정부규제의 산물로서 생겨났다는 점에서 보통 생각하는
상품과 다르다. 더욱 이상스럽게 느껴지는 있는 것은 그것을 소비할 때
만족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주는 오염물질이 상품으로서
거래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오염물질 그 자체가 실제
거래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나 오염면허의 거래가 실질적으로는
오염물질의 거래를 의미한다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처럼 그
본질상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이 이에 대한 거래를
원하는 이상 상품이 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이제는 웬만한 사람이라면 시장에서 상품을 자유롭게 사고 팔수있을 때
자원배분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대기를 오염시킬수 있는 권리를 상품으로 자유롭게 사고 파는 것을
허용함으로써 같은 시장의 이점을 살릴수 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제는 누구라도 돈만 내면 아무 거리낌없이 우리의
환경을 오염시켜도 좋게 되었다고 개탄하는 소리가 없는것은 아니다.
오염면허의 자유로운 거래가 환경을 오염하는 행위에 대해 도덕적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가져오는데 대해 눈살을 찌푸리는 것이다. 그와 같은 행위가
반사회적이라는 사실을 흐리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시장의 힘이 제아무리 강해진다 해도 상품화될수 없고 또한 되어서는
안되는것이 존재한다는 주장은 맞는 말이다. 예컨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순수한 사랑같은 것은 당연히 시장의 힘이 미치지 못하는 영역에 존재해야
할 것이다. 또한 신과 사람사이의 관계에도 시장의 힘이 개입해서는 안될
것이다. "성의 상품화"나 소수의 몰지각한 사람들이 저지르고 있는
"종교의 상품화"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상품화는 바로 비인간화를 의미하기 때문에 전적으로 배격되어야 한다는
식의 고식적인 태도에는 선뜻 찬동할 수 없다. 어떤 것을 시장의
테두리안으로 끌어들일때 잃는 것도 있겠지만 얻는것이 훨씬 더 클 수도
있다. 인간적임만을 내세우고 모든 경제논리를 거부하는 사회에서 사는
사람들이 과연 가장 행복한 사람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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