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자당 이원조의원이 `금융계의 황태자''였다면 박철언의원은 6공의 실
세당시 `검찰의 황태자''로 군림했다.

박의원은 6공출범후 3당합당전까지 노태우대통령의 절대적인 신임을
등에업고 그의 `친정''인 검찰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특히 검찰인사를 떡주무르듯했고 이들이 요직에 기용되는 등 큰
`은혜''를 입었다.

박의원이 인사를 좌지우지하다보니 인사철만 되면 그의 집과 사무실은
박의원에게 `줄''을 대려는 검찰간부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주로 검사장급이상 고위간부들인 이들은 박의원을 만나기 위해 1시간
이상 기다리는 경우가 많았으나 면담시간은 고작 1,2분이었다는 것.

또 새로 임명된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중 일부가 박의원에게 인사를
갔다는 소문마저 당시에 무성해 그의 `힘''을 짐작케 하기도 했다.

박의원은 지난 72년 부산지검 검사로 임관된후 80년 국보위법사위원으
로 발탁되기전까지 9년동안 검찰에 실제로 몸담았던게 검찰경력의 전부.

그는 또 지난 86년 검찰직제에도 없는 위인설관된 법무연수원연구위원
(검사장급)에 임명됐다. 이 자리는 그를 검사장급으로 높여주기 위해 만
든 것이다. 그는 특수 2부장에서 일약 3,4단계를 뛰어넘어 검사장으로
승진한 다음 이 자리에 이름을 걸어 놓고 안기부장 특보로 일해 검찰내
부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일부 검사들은 "박의원이 검찰을 `정치의 시녀''로 전락시키는데 일조
했다"면서 "`박의원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일부 TK출신 검사들의 물갈
이가 이뤄져야만 검찰이 제역할을 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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