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광주민주화운동이 대규모 유혈사태로 확산된 가장 큰 원인이 대검사
용과 무차별 가택수색등 공수부대들의 초기 과잉진압이라고 규정한 당시 광
주시장의 내무부 보고문서가 입수됐다고 중앙일보가 19일 보도, 이를 공개
했다.
이 보고문서의 내용은 2쪽짜리로 간략하지만 정부가 5.18을 "폭도들의 난
동"이나 "불순분자들의 소행"으로 공식 발표하던 80년당시 작성됐는데도 행
정기관 내부에서는 이미 공권력의 과잉진압으로 유혈사태가 촉발됐다는 사
실을 시인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광주특위 청문회에서 김일옥 당시 7공수여단 35대대장등 모든 공수여
단지휘관들이 "광주사태기간중 대검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았다"고 못박았음
에도 불구,대검을 사용한 유혈진압사실이 처음으로 행정기관의 보고문건을
통해 확인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광주사태분석"이란 제목의 이 문서는 당시 광주시장이던 구용상전의원(58.
현 민자당 전남도지부장)이 5,18 진압직후 내무부장관에게 보고한 내용으로
확인됐다.
이 문서에 따르면 광주사태의 가장 큰 원인은 대검을 사용한 유혈진압과
무차별 가택수색등 공수특전단의 초기 과잉진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그 밖의 원인으로 악성유언비어의 난무와 전라도민의 잠재적 피해의식,지
방방위태세의 취약성등로 꼽았으며 "불순분자의 사주"등의 언급은 없었다.
또 사후대책으로 *과잉진압의 시인및 유감표명*연행자의 조기석방*사상자
가족들에 대한 사후관리*조속한 보상등의 8개항을 건의한 것으로 돼있다.
이에 대해 구씨는 "진압직후인 6월1일 서울로 올라와 당시 김종환내무부장
관에게 보고한 문건"이라며 "당시 각행정기관의 보고상황을 내가 직접 분석
한 결과 "불순분자의 침투"나 "김대중씨연행"보다 대검까지 사용한 공수부
대의 과잉진압이 유혈사태를 촉발시킨 주원인이라는 판단이 내려졌었다"고
밝혔다.
5.18이후 도청앞 집단발포 전날인 20일까지 흥분한 시위대를 피하기위해
모자와 선글라스등으로 위장,자건거를 타고 민정시찰을 다녔다는 구씨는
"공수부대들이 시민,학생들의 옷을 벗겨놓고 곤봉으로 구타하는등 과잉진압
을 직접 목격했다"고 밝혔다.
구씨는 또 "공수부대원이 직접 시민을 대검으로 찌르는 광경은 보지 못했
으나 한손에 곤봉,다른 한손에 대검을 들고 진압하는 모습은 여러번 목격했
다"며"5월18일 금남로에서 공수부대원들이 시위대를 대검으로 찔렀다는 보
고도 받은 바 있다"고 증언했다.
구씨는 "21일 도청앞에서 시위대들에게 나가 자제를 호소하는등 시민편에
서서 사태수습을위해 다름대로 노력했지만 상당수 광주시민들이 공수부대
의 무리한 진압에 흥분돼 있었기 때문에 잘 먹혀들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
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