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 대한 은행대출금의 출자전환(Debt-Equity Swap)이 사실상
백지화됐다.

이경식 부총리의 지난14일 발언으로 금융계는 물론 재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았던 대출금의 출자전환은 검토는 물론 그에 대한 반론조차 진지하게
이뤄지지 않은채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

대출금의 출자전환은 이해 당사자인 은행은 물론 대기업에 적지않은
영향을 줄만한 정책과제인데도 정부가 불쑥 내밀었다가 후퇴했다는 점에서
큰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은행과 대기업은 정부의 의중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 혼선을 빚었고 정부정책에 대한 신뢰도만 추락시켰다. 특히
이 문제를 언급한 당사자가 경제탄의 선장격인 부총리였다는 점에서 신중한
정책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은행들은 대출금이 출자로 전환될경우 자금이 묶여 대출이 위축되고
은행경영이 불안해질수있다는 이유로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이와관련,현 은행법은 은행들이 무리하게 유가증권에 투자해 그로인해
대출이 위축되는것을 막기위해 자기자본의 1백%이내로 유가증권투자를
제한하고있다.

시중은행관계자는 "출자로 바뀌면 매월받던 이자를 못받게되고 그대신
1년에 한번 배당을 받게되며 그 배당금조차 해당기업의 경영실적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은행경영의 안정성이 흔들릴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해당기업이 부실화되면 은행도 따라서 부실화될수 있어 현실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테마라고 주장했다.

대기업들도 탐탁치 않다는 입장이다. 대기업들은 정부가 은행을 좌우하는
상황에서 은행들이 대출금의 출자전환을 통해 대기업의 주주가 될경우
기업경영에 간섭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반론을 폈다.
김주형럭키금성경제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정부의 은행경영에 대한
영향력이 여전히 큰 상황에서 은행에 의한 산업자본지배는
정부통제강화라는 시대역행적인 결과를 초래할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석래한국경제연구원장(효성그룹회장)도 "은행에 대한 정부입김이 큰
상황에서 은행대출금의 주식전환은 바람직하지않다"고 밝혔다.

물론 은행대출금의 출자전환은 긍정적인 효과를 낼수도 있다. 바로
이부총리가 말한것처럼 대기업그룹의 소유집중완화와 함께
기업재무구조개선효과를 거둘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대기업그룹의 소유가 계열주에 집중돼 독단적경영의 폐단을
낳았다는 점에서 소유의 분산이 필요하고 대출금의 출자전환은 그 한방법이
될수 있다. 출자전환에 비례해서 계열주의 지분율이 낮아질수있기
때문이다.

재무구조도 개선될수 있다. 기업들은 무거운 금융비용부담에
시달리고있어 일부라도 주식으로 바뀌면 빚부담을 덜고 안정적인
자금조달원을 확보하게돼기업내용이 좋아진다. 특히 부실채권이 주식으로
전환되면 기업이 얻는 이익은 크다.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KDI)연구위원은 "자금공급자인 은행이 주주로
참여해서 얻는 기업내부정보를 토대로 수익성 위험도에 입각한 합리적인
투자결정과 자금배분을 유도할수있다"며 대기업출자전환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했다. 김연구위원은 또 "적정규모의 출자전환은 기업재무구조 개선에
도움을 주고 최근 세계금융시장의 겸업화추세에 부응할수있다"고 지적했다.

은행대출금의 출자전환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도 있으나 실행상의 기술적인
문제도 많다. 우선 출자전환을 해당은행이나 기업의 자율적인 판단에
맡기면 제대로 되기 어려워 강제성을 부여해야하는데 이조치가 강제로
추진될수있는 성질도 아니라는 점에서다. 또 출자로 전환할 경우
평가방법상의 기술적인 문제도 적지않다.

이부총리의 얘기중 은행주식을 갖고있는 대기업채무는 출자전환대상에서
제외키로 한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는 은행과 기업간의 상호주식보유의
폐단을 염두에 둔것으로 보인다. 특정은행과 기업이 서로 주주일 경우
은행경영이 그기업에 의해 좌우될수도 있다.

아무튼 은행대출금의 출자전환은 해당은행과 기업에 적지않은 파장을
불러일으킬 중요한 테마였는데도 사전검토없이 부각됐다가 흐지부지되는
과정에서 예상치못한 혼란을 초래했고 앞으로 주요정책과제를 추진하는데
좀더 신중해야한다는 교훈을 던져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