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가 일본에 전파되었을때 일인들은 기독교인을 "기리시탄"이라고
불렀다. "크리스천"이란 영어식 발음보다 포르투갈식 발음을 당시의
일인들은 선호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한자로는 길리지단으로 표기했다.
그러다가 기독교에 대한 금교령이 내려지자 길리지단은 귀리사단 또는
절사단으로 그 표기가 바뀌어졌다. 금지된 종교를 믿는사람들에게
"길"이나 "리"와 같은 좋은 의미의 한자를 붙일수 없다는 것이었고 그대신
귀와 사라는 섬뜩한 글자들이 동원되었다.

중국에 시장경제의 물결이 휩쓸어들자 코카콜라가 가구가락으로,비키니가
비기니로 표현되는 것은 애교있는 표현으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그러나
로보트를 기기인으로,비디오를 자성록상기로,그리고 PC를 개인전용전뇌로
표현하는데는 아무래도 우리의 생활감정과는 거리가 있음을 느끼게 한다.
날로 일상화되어가고 있는 PC를 전뇌라 한다는 것은 어쩐지 전류가 온 몸을
스치고 가는듯한 으스스한 기분마저 든다.

표음문자가 의사소통의 중심이 되어있는 우리말이나 유럽의 언어들을
억지로 표의문자인 한자로 바꾸어 놓으면 글자 그자체가 함축하는 뜻
때문에 엉뚱한 방향으로 해석될수가 있다. 앞서말한 "기리시탄(귀리사단)"
에 대한 저주스런 판독이나 "전뇌"가 주는 으스스한 어감등이 바로 표의
문자의 위력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의 수도 "서울"의 한자표기문제가 아직도 결말이 나지않고 있는
모양이다. 며칠전의 "한경" 월요수상에 의하면 서울시는 "서울"을 수이란
한자로 표기할 작정이라 한다. 외대의 박성래교수(과학사)가 집필한 이
수상에 대해 독자들의 반응이 예상외로 컸다. 한자어표기의 당위론도 없지
않았으나 서울의 이름이 이미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진 수도명으로 뿌리를
내린지 오래인데 지금와서 무슨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냐는 반대론이
절대적인 우세를 보였다. 오직 중국인들만을 위해 우리의 수도이름을
국민들의 생활감정과 동떨어진 한자이름을 생산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여론의 지지를 받을 것같지 않다는 느낌이다. 구태여 한자를 쓰고싶으면
서울의 어원인 서라벌 또는 소부이로 표기하고 중국인들로 하여금 "서울"로
읽도록 하는게 타당할것 같다. 북경을 베이징으로,대판을 오사카로 읽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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