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6세기경 지금의 터키일대와 그 주변의 소아시아지역에 대제국을
이루고 있던 리디아에 심각한 한발이 계속되었다. 온 국민은 허리를
졸라매며 배고픔을 견뎌야만 했었다. 그러나 흉년은 해를 거듭할수록
심해갔다. 아티우스왕은 기근을 이겨내기위한 한 방편으로 재미있는
놀이를 창안토록 명령했다. 주사위놀이 갖가지 공놀이,윷던지기등 많은
흥미꺼리가 발명되었다.

이들 놀이는 날로 성해갔고 정부도 적극 권장했다. 배고픔도 잊고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놀이에 빨려들었다. 이틀에 하루는 식살 걸르기도
했다. 러시아 국민은 참담한 배고픈 날들을 놀이에 빠져 18년을 버틸수
있었다.

이 거짓말같은 이야기는 그리스의 철학 헤로도토스가 남긴 명저,"역사"에
수록된 사실이다. 헤로도토스에 의하면 리디아의 비극은 그래도 끝이나지
않아 "제비뽑기"의 아이디어를 창출해서국외 이민조와 국내잔류조를 갈라
겨우 위기를 넘겼다. "제비뽑기"도 이래서 생겨난 룰이다.

놀이와 스포츠의 구별은 본래 그 구획이 불가능한것이다. 원시시대의
사람은 생존을 위한 투쟁이었지만 로마시대에는 놀이로 변형되었고
오늘에는 당당한 스포츠의 영역에 들어간다. 리디아인들이 배고픔잊기를
위해 창안해낸 놀이들도 비록 많은 변질과 수정을 겪기는 했어도 이들
경기(또는 놀이)가 올림픽의 주종을 이루고 있음은 부인할수 없는 일이다.

고대 로마에서,또는 이집트에서 시작되었다는 당구 역시 그 원점은
아시아의 공굴리기에 있음은 명백한 일이다. 당구게임이 단순한 놀이인가
스포츠인가. 물론 어리석은 질문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뒤늦게(90년)스포츠가족으로 편입되었다. 법이 그렇게 정했다 한다.

그런데 체육행정을 관장한 왕년의 체육부의 관리들이 법의 시행령에
당구장출입에"18세이하 불가"라는 족쇄를 쳐 놓았었다. 풍기문란이란
괴씸죄가 관료들의 눈에 거슬렸던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엊그제 이 년령제한규정은 위헌이란 판정을 내렸다. 당연한
심판이었다. 문제가 있다면 당구와 관련된 탈법행위인 것이지 당구
그자체가 미성년자를 밀어낼 아무런 근거가 없다.

흘러간 명화들속에 등장한 고급스런 당구대의 신들이 한결 밝게 비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