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집에 쌍둥이가 태어났다. 자라는 환경이 같았다. 같은
국민학교에 들어갔고,같은 날 음악을 배우기 시작했다. 음악 선생도
같았고 피아노 연습 시간도 같았다. 결국 같은 음대에 들어갔다. 그런데
결과는 같지 않고 달랐다. 쌍둥이중 한 사람은 피아니스트로 대성했고
다른 한 사람은 실패했다. 실패한 사람은 처음부터 피아니스트가 되는
길을 밟지 말아야 했었다.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훌륭한 직업인이 되었을
사람이 길을 잘못 들어 실패한 피아노 인생이 되고 말았다.

어느 집에 또 쌍둥이가 태어났다. 이 집의 부모는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교육관을 가지고 있었다. 쌍둥이는 어렸을 때부터 국어 산수
식으로,사람되기 위해서 우리나라 어린이들 전부가 배워야 할 학과목의
공부를 열심히 했다. 의무 교육을 받아야 사람이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이렇게 교육을 받은 쌍둥이 중 한 사람은 사람다워졌고,다른 한 사람은
사람다워지는 일에 실패했다. 사람다워지는 일에 실패한 쌍둥이가 만일
시작부터 어떤 다른 직업인의 길로 들어섰다면 실패한 인생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결론을 나중에 얻는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무엇이 사람을 성공의 길로 가게 하는가.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것은 모든 사람이 똑같이 될수가 없다는 것이다. 똑같이
될수 없다는 말은 똑같은 교육을 시켜보았자 결과적으로 똑같은 사람이
될수 없다는 말이 된다. 이말을 뒤집으면 똑같은 교육을 시킬 것이 아니라
사람의 적성에 맞는 다른 교육을,처음부터 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 된다. 모든 어린이에게 같은 교육을 시키다가 커서 다른
교육을 시킨다는,상투적 교육관으로부터 탈피해야 한다는 뜻이다.

옳은 의미에서의 교육 개혁은 교육철학적 차원에서의 개혁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직업인적 전문성의 시각이 필요로 한다면 국민학교 시절 부터
사람에 따라 "다른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교육관이 우리교육의 뿌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전문 인력 양성
교육법이 따로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