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의 작가 조지 오웰은 "이 시대의 정치적 혼돈은 언어의
타락과 깊은 연관이 있다"고 일찍이 지적했다. 47년전 "정치와 언어"라는
한 에세이에서 그는 "거짓말을 진실처럼 들리도록 만드는 것이
정치언어"라며 이에 대한 각별한 주의를 환기시켰다.

유태인의 처형을 집행했던 라인하르트 헤이드리히는 유태인의 처형은
"그들에게 죽음의 자비를 안기는 것"이라고 둘러댔다. 소위 "궁극적
해결"(Final Solution)로 번역되는 독일어의 "Endlosung"은 대량학살을
위장한 악의에 찬 정치언어였다.

"냉전이후의 세계"에 느닷없이 등장한 "인종 정화"(Ethnic Cleasing)가
"화약고"발칸반도를 들쑤셔 놓고있다.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도저히
함께 살수 없는 모슬렘"과 크로티아인을 몰아내고 보스니아에
세르비아인들만을 위한 "대 세르비아"를 건설하는 민족자결운동임을
천명한다. "불순물이 제거돼 인종적으로 순화된 세르비아"가 이들의
목표다. 그러나 살상과 축출 강간등 그 과정에서의 잔학행위는 바깥세계에
보스니아 모슬렘에 대한 현대판 "궁극적 해결"의 악몽을 안기고있다.

발칸반도는 수세기동안 묵은 인종적 종교적 반목과 역사적 정치적
이해관계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세계의 화약고"다. "인종적 정화"란
타인종그룹을 솎아내거나 몰아낸다는 말로 특히 세르비아와
크로티아인들간에 오랫동안 통용돼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고연방의
해체를 결과한 세르비아-크로티아간의 충돌 발발 직후인 91년 7월말
로이터통신 특파원이 이 아리송한 표현을 처음 인용 보도함으로써 "오늘의
용어"로 자리잡았다.

세르비아인들에게 모슬렘은 곧 왕년의 "야만적 침략자 터키족"이다.
"그들은 슬라브혈통이 아니다. 생김새도 우리나 서구인 같지않은
야만인이다. 유럽에 포크와 나이프를 보급시킨 자가 누구인가.
세르비아인이다. 두번 다시 모슬렘과과 함께 살지는 않을 것"이라며
막무가내다.

기독교와 이슬람과 러시아 정교,세르비아-러시아간 범슬라브주의와
보스니아 무슬림-터키의 이슬람주의,크로티아와 슬로바니아 독일
오스트리아 형가리를 묶는 "가톨릭 유대"등 "발칸의 방정식"은 다차원이다.
인종단위로 10개 준자치지구를 설정하는 "밴스-오웬"방식은 충돌을
차단시키는 반목과 증오의 현상유지다. "인종 정화"를 용납않겠다던
미국의 클린턴정부도 보스니아 모슬렘의 무장을 도와 공포의 균형을 통한
휴전합의쪽으로 물러서고 있다. 화약고주변에 불씨를 더 키워가는 일대
모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