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꼭 5백31년전인 1462년(세조8년)5월8일 경복궁에서 일어난
일이다.

세조가 사정전에서 정사를 본뒤 왕세자와 양녕대군,영의정 정창손을
비롯한 대신 20여명에게 술자리를 베풀었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세조가 정창손에게 물었다.

"내가 매달 1일과 15일 조하에 성균관유생들을 배석시키고 제서를
강의하려 하는데 어떠하겠는가"
선비들을 눈속의 가시처럼 미워만하는줄 알았던 세조의 뜻밖의 이야기에
감읍한 정창손은 "진실로 마땅합니다"라고 대답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세자가 올린 술 한잔을 받아 마신 세조가 세자의 학문이 나날이
발전해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학문에 통달한 뒤에 국사를 넘겨
주려한다"는 말을 꺼냈다. 그말이 채 끝나기도전에 정창손은 입버릇처럼
돼버린 "진실로 마땅합니다"를 다시한번 되뇌어 버리고 말았다.

그날 저녁 교태전에 나온 세조는 도승지 홍응을 불러 "내가 선위하려하니
속히 모든 일을 준비하라"고 능청을 떨었다.

홍응은 너무 놀라 슬슬 눈치를 살피면서 "신하된 자가 차마 듣지조차 못할
일이니 신은 감히 명을 받을수 없다"고 떠듬떠듬 입을 떼었다.

세조가 일어나 홍응의 손을 잡고 "정창손은 나에게 빨리 위를
버리라고했는데 너는 나의 명을 따르려 하지 않으니 어인 일인가"했다는
기록을보면 세조는 정창손을 몹시 괘씸하게 여겼던 모양이다.

영의정 정창손의 실언소문은 날개돋친듯 퍼졌고 조정은 발칵 뒤집혔다.
정창손을 논핵하는 상소가 빗발치듯 잇따랐다.

충훈부당상 정인지가 상소를 올려 "아비가 집을 버리려는데 자식이 즐겨
따르는 꼴"이라고 극언하면서 다른 뜻이 있는 것이 분명하니 국문해서
밝혀야 한다고 들고 일어났다. 그는 또 그때 그자리에 있었으면서도
한마디 말도 안한 다른 대신들도 모두 국문해야 한다고 논죄했다.

벌떼처럼 일어난 공신들의 상소에 자신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확인한
세조는 정창손을 파직시켜 고신과 과전을 몰수하고 외방으로 쫓아버렸다.

정창손을 공신적에서까지 빼어버려야 한다고 탄핵에 앞장섰던 신숙주가
영의정이 됐고 권람이 좌의정,한명회가 우의정에 올랐다.

"세조실록"에 자세히 기록된 당시의 정황으로 미루어 보면 정창손의
"진실로 마땅합니다"라는 말은 분명히 실언이었던것 같다. 세조가
대신들을 물갈이하기 위해 꾸며낸 정치극의 요소도 짙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정창손의 한마디 실언은 중대한 사건으로 비화되고
말았다. 지금으로 말하면 내각이 교체되는 계기가 됐으니 "진실로
마땅합니다"라는 아첨의 말이 겪은 가장 큰 시련이었던 셈이다.

정창손을 파직시킨뒤 세조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기록돼
있다.

"내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이 지나쳐서 지극히 칭찬하다가 정창손에게 죄를
짓게 하였다"
그 자리에 정창손이 있었다면 그는 또 "진실로 마땅합니다"라고 했을것이
틀림없다.

집권자가 바뀌어 권력이 한곳에 집중되면 공신들이 들끓게 되는 것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런 유의 사건이 요즘이라고해서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인간사는 그 규모나 형태는 달라질수 있어도
5백년전이나 지금이나 그 본질에 있어서는 똑같은 일들의 반복이라는 것을
역사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서로 아첨하는 일만을 하고 있다. 인간끼리의 결합은 그러한
상호의 기만위에서 이루어진다"는 파스칼의 말이 한층더 실감나게 들리는
"격변의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이 어떤 시대에 살든,어떤 상황에 처하든 진실로 경계해야할
아첨은 "아첨하면서도 아첨하는 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아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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