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이야기하다 보면 늘상 어제의 뒷얘기가 나오게 마련이다.
재산공개의 후문이 그렇고,신한국 창조가 그렇고,입시부정이 그렇다. 어떤
얘기를 하거나 무언가를 고치려다 보면 그 뿌리와 과거가 들추어지게
마련이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그가 지금 무엇을 하는 사람이고 무엇을
했었는지가 동시에 거론되기 때문에 "과거를 묻지 마세요"란 노래가
한스러운 이들에게 18번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최소한의 염치요 양심인
까닭이다.

어언 10여년은 됨직하다. 지기 정봉열시인(산업은행 투신부 과장)
정길영부장(위너스카드기획부) 최인호씨(한겨레신문 교열부위원)와 함께
어느 봄날 토요일 오후 여주의 남한강변으로 작당하여 나간 적이 있다.
그날밤 모두 몹시 취한 채 주막에서 밤새껏 노래부르며 놀았던 것이 계기가
되어 "수유회"라는 이름으로 자주 만나게 되었다. 주로 4월에 수유리
골짜기에서 만나 거나하게 한잔하고는 노래를 부르는 자리로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모임은 그뒤 강래희교수(중앙대
영문과) 최승자시인,안희옥씨(출판인),윤혜영교수(한성대 국사과)
박거용교수(상명여대 영문과) 허의도씨(월간중앙 기자)등이 동참하면서
사람따라 노래가짓수가 늘어나 유행가에서 가곡으로,민요로 또 운동권
가요나 동요로 까지 레퍼토리가 무척 다양해졌다. 노래를 못부르는 이는
소외감을 느낄 정도이다.

그 가운데 필자의 흘러간 유행가 솜씨는 정평이 나있고(?)강내희형과
박거용형의 민요솜씨 역시 그들의 전공보다도 높은 경지(?)를 보이고
있으며 윤혜영형의 운동권 가요,정봉렬형의 가곡,정길영형의
최신유행곡,허의도군의 기타 솜씨가 돋보이고 있고 나머지 지기들은 의욕은
있으되 그 한계를 좀처럼 넘지 못하는 노력파들로 구성돼 있다.

노력파에 속하는 지기들은 주로 좌중 화담을 유도하거나 술을 많이
마신다는 구실로 그나마 체면(?)을 유지하는 형편이다. 그들을 자극하기
위해서라도 요즘 유행하는 노래방이나 단란주점 출입을 유도해야 할텐데
저마다 바쁘니 그것도 여의치 않다.

이 모임의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대부분이 시골출신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모두 빈농의 자손이란 얘기가 아니라 정말 우연찮게 경상 충청
경기지역 출신으로 구성돼 있는데 마음같아서는 서울 강원 전라 뿐 아니라
이북출신까지도 같이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렇게 되면 노래도
다양해질 것이고 얘기도 재미있을 것 아닌가.

지난 17일 토요일에는 올해 정기모임을 4.19탑앞에서 가졌다. 식단을
참배한후 막걸리로 시작하여 저녁에는 윤혜영형 집으로 옮겨 술과
노래판으로 이어졌다. 이런 행동들은 그저 흥청망청 노는 중년층의 한량이
아닌 60,70년대를 몸소 겪은 그 시대 젊은이로서의 아픔과 동지애때문이
아닐까 한다. 때문에 자리는 늘상 엄숙해지다 못해 숙연해 지기까지 한다.
취한이는 먼저 귀가하고 2,3차까지 버틴 이들은 주로 시국담에서 부터
자녀교육 문제까지 얘기는 끝이 없다. 모두들 4.19와 특별한 인연이 있지
않더라도 경건함을 잃지 않고 그 서럽도록 아름다운 봄을 즐길 뿐이다.

특별히 정한 주기가 없이 그저 마음이 내키면 연락해서 만나는 사이이지만
매년 4월이 오면 모두들 아무 이유도 없이 만나지 못해 좀이 쑤시고,그래서
꼭 만나는 달이니 이 4월은 우리 모두에게 정겹고 뜻깊은 달이 아닐 수
없다.

이후에도 모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