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겉으로는 금융자율화를 내세우면서도 증권계 인사에 잇따라
깊숙이 개입해 업계의 불만을 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인사과정에서 위인
설관을 유도하는 등 상식에 어긋나는 처사까지 일삼고 있어 오히려 예전
보다 후퇴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23일 재무부와 증권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진무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
을 대한투자신탁 사장으로 내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정부는 대한투자신탁의 현 김유상 사장의 임기가 2년 정도 남은
점을 감안해 김 사장의 새 자리 마련을 위해 산업증권으로 하여금 회장제
를 신설토록 하고, 김 사장을 산업증권 회장으로 내정했다.
이에 대해 증권업계에서는 정부가 전직 고위관료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
해 임기가 남아 있는 민영회사의 사장을 물러나게 하고, 또 물러나는 사
람의 자리를 마련하려고 새 자리를 신설토록 하는 것은 업계의 자율성 침
해차원을 넘어 금융계 질서를 해치는 처사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정부는 이에 앞서 지난 8일 역시 임기가 남아 있던 강성진 증권업협회
회장을 물러나도록 한 뒤 명예회장제를 도입토록 해 강 전 회장을 취임하
게 했다.
그 결과 증권업협회는 기존의 상임고문(김영일 전 회장)에다 명예회장
이라는 두개의 `옥상옥''이 설치돼 예산낭비를 초래하고 있다.
정부는 또 신임 증권업협회 회장에 보람증권의 연영규 사장을 내정해
관철시켰는데, 공교롭게도 대우.대신.럭키.고려 등 증권업협회 회원인
8개 대형 증권사 사장들의 중국방문 기간인 지난 8일 회원총회를 열도록
했다. 이에 대해 증권업계에서는 소형 증권사 사장을 회장으로 뽑는 데
대한 대형 증권사들의 반대를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회의 날짜를 잡았
는 비난이 일었다.
정부가 같은날 증권거래소 회원총회(증권업협회 회원과 대부분 중복됨)
를 소집해 자신들이 내정한 홍인기 산업증권 사장을 새 이사장으로 뽑도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정도에서 벗어난 정부의 처사는 증권업계를 어수선하게 만들고
직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
몇몇 대형 증권사 사장들은 앞으로 증권거래소와 증권업협회 회의에 직
접 참석하는 대신 부사장을 대리참석시키겠다는 의사를 공공연히 내비치
고 있다.
증권사노조협의회의 한 간부는 "정부가 증권 관계기관과 민영회사의
인사를 좌지우지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 과정에서 무리하게 위인설관을
유도하는 처사는 업계 발전에 큰 걸림돌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