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보를 비롯해서 간부급들이 모두 번주의 뜻에 따르기로 한 터이라
조원들도 처음에는 의견이 분분하다가 결국은 행동을 같이하는 도리밖에
없었다.

그러나 끝까지 동의하기를 거부한 사람이 한 사람 있었다.
아리무라지사에몬(유촌치좌윙문)이었다. 그는 에도의 번저에 선발대
격으로 나가있는 아리무라유스케의 동생이었다.

"사이고다카모리를 시마나가시 시킨 히사미쓰의 말을 믿다니,어리석기 짝이
없소. 그것뿐 아니라,지금까지의 번정을 보면 뻔한 일이 아니오. 그가
근황의 길로 번력을 총동원하여 나설 것 같소? 다 우리를 휘어잡기 위한
입에 발린 소리에 불과하단 말이오. 그런 감언이설에 넘어가다니
한심하오. 나는 절대로 동의할 수가 없소. 모든 동지들이 다 돌아선다면
나 혼자서라도 탈번을 해서 에도로 가겠소. 그리고 기어이 이이나오스케의
목을 날려버리고 말겠으니 두고 보시오"
스물한 살의 최연하인 그의 객기 어린 결의를 가라앉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오쿠보가 탈번의 불가능함을 역설해도, "이미 탄로가 나서 전원이
탈번할 수는 없을지 모르지만,나 혼자서는 얼마든지 할 수가 있어요" 하고
반박을 했다. 마치 이이나오스케와 개인적으로 사무치는 원한이 있어서
기어이 복수를 하고야 말겠다는 그런 사람 같았다.

도리없이 오쿠보는 그를 제외하고,다른 조원들 전원의 서명을 받았다.
그리고 자기가 다이묘와 섭정 두 부자 앞으로 그뜻을 기꺼이 좇아서 충성을
다하겠다는 서약 형식의 글을 썼다. 그리고 그것을 휴대하고서 혼자
번청으로 히사미쓰를 알현하러 갔다.

친유서를 보냈던 터이라,히사미쓰는 기꺼이 오쿠보를 만나 주었다.

섭정인 번의 실권자 히사미쓰와 히라사무라이에 불과한 오쿠보의
초대면이었는데,그 대좌에서 오쿠보는 히사미쓰의 눈에 비상한 젊은 지사로
비치는 데 성공하였다. 우선 그가 마련해간,조원들 한사람한사람의 서명이
첨부된 서약 형식의 답서가 히사미쓰의 마음을 사로잡았고,정중하면서도
예리한 언변과 겸손해 보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기개가 넘치는 듯한
태도에 히사미쓰는 고개를 대고 끄덕이며 속으로, "좋은 인재로군. 내가
찾고있던 그런 인재라니까" 하고 흐뭇해 하였다.

알현을 마치고,오쿠보가 자리에서 일어서려 하자 히사미쓰는, "잠깐만."
손짓을 하며 그를 자기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도록 했다.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